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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문득 '마크 로스코'의 분홍색이 나타났다. 고요한 빛, 붉은 시간이 출현하는 시간이었다. 신화적이고 원시적인 감성은 더 이상 형태를 필요치 않을 것이라던 그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러시아 출신 추상표현화가인 마크 로스코의 그림들은 나를 깊은 내면의 세계로 끌어들였고, 마치 우주를 유영하듯 태초의 신비로운 세계로 이끌기도 했다.

그 그림들을 밀양의 산 정상에서 볼 줄은 몰랐다. 우리 행성에서 초속 30만㎞인 빛의 속도로 8분이면 도착한다는 태양이 만든 그림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붉은 빛이 여려지면서 푸른 시간들이 겹쳐지고 있었다. 난 이 매혹적인 파란 순간들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밤의 적막과 회한의 시간들이 낮의 선명한 기대로 포개어지는 지점이 내 의식을 명료하게 했었다.

새벽녘에 깨어 책을 읽다가 창문을 열면 금강변으로 솟아오르던 일출이 있었다. 그 때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늘 똑같은 시간과 장면을 찍어도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적이 없었다.

수많은 일출사진을 대조하면서 매번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이것은 그리스 에오스여신이 매일 새벽마다 뿌리는 이슬의 양이 다르기 때문일 거였다.

파스텔톤의 파란 여명, 오렌지 빛 황혼, 환상적인 무지개, 오로라의 장관까지 이 빛나는 현상들은 태양과, 그로인해 생명력을 얻은 지구의 대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풍경들이었다.

언젠가 이 지구별이 대류권, 성층권을 포함하여 대기가 있는 곳이 고작 땅에서 500㎞이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잠시 의아해했었다.

그것은 승용차로 몇 시간이면 도달하는 거리였고, 지구에 사는 행성인들이 내지르는 소음과 허세와 싸움들이 겨우 그 몇 시간 내의 대기권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에 다소 우스꽝스럽고 안타까워졌던 것이다.

갑자기 가슴 한곳이 답답해져왔다. 밀양의 산 정상에서 밤을 지새운 수백 명의 동료직원들은 부스스한 몰골로 아무 말이 없었다. 벌써 세 번째 밀양근무였고 날짜로 치면 한 사람당 거의 보름이 넘게 산속에서 추위와 허기로 지낸 참이었다.

헬기와 삭도(索道)로 물자를 나르는 철탑공사현장을 전국에서 모인 직원들이 몸으로 지키고 있었다.

송전철탑공사를 저지하는 사람들의 폭력과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그대로 받아내던 여직원들은 여기저기서 혼절하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다. 옷은 찢기고 오물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험한 산길을 새벽과 밤늦게 오르내리느라 다리가 부러지고 이곳저곳을 다치기도 했다.

인류최고의 발명품이고 문명의 총아로 불리는 전기,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로 진입하게 만든 최고의 공신인 전기의 길목을 두고 지금 벌어지는 일이었다.

직원들은 허탈해했고 전력산업을 선도한다는 자긍심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건설비용은 점점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고 공기는 길어졌다.

인류의 3분의 1이 아직도 전기혜택을 못 받고 있는 지구별에서 그래도 우리가 하는 일에 희망을 가졌고, 모두들 이번 산속에서의 근무 아닌 근무가 마지막이기를 기원했다.

오늘 아침 떠오른 태양이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들을 끊임없이 재생시키고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듯이, 우리가 만들어 보내는 전기가 우리의 이웃과 사회와 나라를 성장시킬 유일한 생명의 혈맥임을 우린 알고 있었다.

철탑을 지키는 우리도 이 땅의 아버지들이고 아들들이고, 살아 꿈틀거리는 밀양의 산하를,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을, 숲의 따스한 숨결을 사랑하고 있음을, 자연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진 문명 또한 아름답고 황홀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아침 일출과 저녁의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대기 속에 먼지와 물기가 있기에 가능하듯이, 지금의 다툼과 갈등도 모두의 아름다운 승리로 귀결될 것임을 우린 알고 있었다.

분홍빛과 푸른빛이 서로 포옹하듯 포개지는 밀양의 일출을 이제 따스하게 맞이할 수 있기를, 난 오늘 아침 간절히 바라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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