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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경쾌한 비트의 기타연주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자 난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고등학교 다닐 때 기타반주에 맞춰 걸핏하면 부르던 노래였다. 그 노래의 신나는 멜로디를 좋아했다

폴 앵카의 모든 노래는 내 하이틴 시절의 전설이었다. '다이애나'부터 시작해서 '유아 마이 데스티니', 그중에서도 '크레이지 러브'는 정열적인 사랑을 갈망하는 내 또래 피 끓는 동무들도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르던 노래였다.

내 10대와 20대 초의 한 시절을 함께해온 폴 앵카였다. 그 폴 앵카의 낯익은 목소리 '파파'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래를 찾아서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다. 이제는 흥겨운 비트의 기타 연주보다는 노래의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아버지는 우리를 먹여 살리고 신발을 신겨주기 위해 매일 일하셨죠.'

내 아버지도 늘 일하셨다. 가끔씩 몸이 아파 누워 계실 때 말고는 참으로 부지런하게 움직이셨다. 전쟁 중에 왼손을 잃고 평생 의수를 한 채로 사셨지만 난 아버지가 장애를 가진 걸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다.

어릴 때는 매주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는 한 손으로 때를 밀어주셨다. 매번 얼마나 세게 미는지 눈물이 찔끔 날 지경이었다. 목욕탕이 드문 시절이라 말쑥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순전히 부지런한 아버지 덕분이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독한 감기몸살로 너무 힘들어서 학교에 못가겠다고 했다. "정 그러면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뵙고 인사나 하고 오자"며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함께 등교를 했다. 그 때의 선생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버님, 애가 이렇게 아픈데 그냥 쉬게 하시지요."라며 황송해 하던 모습, 그 이후로 난 한 번의 결석도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생 때 국어 글짓기 과제물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질풍노도의 시절, 무작정 반항하던 십대의 울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잡문이었다. 제목자체부터 좀 과격했다. '어느 광인(狂人)의 일기', 체육교사이던 담임선생님이 먼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불렀다. 너 댓 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아버지에게 선생님이 글을 내밀었다. "아버님 이 '범인(犯人)(?)의 일기'를 좀 보세요. 이놈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목은 한자로 써 있었다.

그 때 아버지는 교무실이 떠나가도록 껄껄 웃으셨다. "선생님 이놈이 생각이 좀 많습니다. 이놈은 내가 잘 아니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어쨌든 고맙습니다. 제 자식에게 관심을 가져 주셔서"라고 한마디 하시곤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이후에 국어선생님과 담임선생님 간에 심한 언쟁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버지는 내가 하숙을 옮길 때마다 일부러 하숙집을 찾아오셨다. 맨 먼저 하시는 일이 주인아저씨를 찾아 큰 절을 올리는 거였다. 갑자기 큰 절을 받게 된 하숙집 아저씨는 당황해 하며 맞절을 했다. 이후 난 다른 하숙생들 몰래 가끔씩 귀한(?) 콜라를 얻어마셨고, 도시락 바닥에 숨겨진 계란 프라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너무 짧게 사셨다. 세상을 뜨신지 20여년이 지났다. 며칠 전 아버지가 된 내 아들을 생각하며 난 내 아버지가 목이 메도록 그리워졌다.

'아들아 난 네가 자라는 모습이 자랑스럽단다. 이젠 네 마음대로 하렴.' 파파노래는 그렇게 무심하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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