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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20대를 막 시작하던 7월, 점액질의 장맛비가 온몸을 끈적이며 적시던 밤에 난 지하철 1호선 안에 있었다. 부평역에서 종로까지 매일 오가는 길에서 끝도 없는 상념들과 함께 달린 시간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릿한 슬픔과 답답함, 낯선 어둠속에서 맞이한 막막함, 그 때 내 나이 20대이니 어지간히 감상에 젖을 때이지만 이곳에서 내 영혼을 온전히 지켜내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내 생의 증거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며, 채우지 못해 괄호로만 남을 문장처럼 내 생이 공허해질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폭염속의 바람 한 점 없는 서울의 거리에서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가끔씩 찾던 종로의 '소울추레인'같은 디스코텍 덕분이었다. 현란한 사이키 조명 아래서 신중현이 부르는 노래와 비트 강한 디스코 음악을 밤새도록 듣곤 했다. 그 때에만 내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추상적이고 인위적인 도시, 쉬 지워지는 안개처럼 모호한 도시, 익명의 도시, 위로받지 못할 수수께끼 같은 서울을 떠난 후 난 다시는 살기위해 서울을 찾지 않았다.

가끔씩 서울 출장길에 대학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기 위해서는 난 많은 용기를 내야만 했다.

매초 매시간을 다투는 친구들, 맥주 한잔 마실 여유조차 없던 친구들, 그들의 머나먼 출퇴근길, 전철에 무거운 몸을 싣고 서울 변두리 보금자리로 향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난 한마디 하곤 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가끔씩 시골로 쉬러 오라고.

친구들은 자주 시골로 내려올 수 없었고 성실해서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열심히 살 수밖에 없어 성실해져야하는 서울생활을 부끄러워했다.

내가 건넨 말에 친구가 씁쓸하게 대꾸했다. "내 직장이 서울이니 시골에서 살고 싶어도 갈수가 없네. 내 아이들 학교가 여기에 있고, 이제 서울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애들이 되었으니 더 어려워졌어."

그 서울을 간만에 다녀왔다. 거대도시를 횡단하기 위해 난 지하로 내려갔다. 공조기로 순환하는 인공 공기가 도시 밑을 떠돌았다. 인파로 북적이는 지하철 안에서 난 젊은 시절의 상념에 또 다시 빠졌다. 내가 만약 젊은 그 때 생각을 달리하여 서울에 정착했다면 내 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침마다 색조를 달리하여 떠오르는 일출을 보지 못할 것이며, 열어젖힌 창문으로 불어오는 강바람의 향긋한 내음을 맡지 못할 것이고, 은빛 비늘처럼 눈부시게 반짝이는 금강의 물결을 보지 못할 것이다. 몇 시간이고 자동차를 마주치지 않고 달리는 하이킹을 하지 못했을 것이며, 게으르고 한가로운 산책을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인구 천만이 사는 세계적인 도시 서울은 만화경의 감각이 꿈틀대고, 그 나름 불야성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경이와 활기가 공존하는 도시임을 난 인정한다. 서울이라는 공룡도시를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흘리는 땀방울과 부지런한 발걸음도 존중한다.

그러나 야구장 30배 크기의 지하도시를 또 다시 서울 안에 건설한다는 뉴스를 접하고선 서울에서 매캐한 인조 공기로 숨 쉬는 친구들을 이제는 제발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정시에 움직이는 지하철 시간표처럼 친구들을 어제와 오늘이 똑같은 사람으로 남게 하여 붙잡지 말기를 나는 부탁하고 싶었다.

풀과 꽃과 흙이 뿜어내는 진짜 향기를 맡으면서 매일의 일출과 일몰이 그들의 추억으로 남게 해달라고, 사람살이가 게으를 수 있도록 용납하고, 내 친구들에게 한가로이 고독할 수 있는 시간을 주라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고향집의 정원같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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