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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12월의 새벽에 마주치는 시간만큼 진실한 순간이 있을까· 아직 바깥은 캄캄하다. 난 뜨거운 물에 진하게 커피를 타서 내방으로 건너온다. 온기가 남은 이불속에서 책을 펼쳐 들었으나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12월의 새벽은 허세도, 겸손도 필요 없다. 그저 나만 바라보면 된다. 이제 수확은 끝났다. 들판이 텅 비었듯이 내가 일군 1년간의 경작지도 휑하니 비워졌다.

지난봄의 화사한 벚꽃이 사라지고, 지난여름의 뜨겁던 태양도 식어버리고, 먼 여행을 떠나는 승용차의 엔진소리가 멀어지듯이 한 번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회한도 후회도 없는 12월의 새벽을 좀처럼 만나지 못했다. 예전에는 회한과 후회가 많은 12월을 맞이했다는 말이다. 영하의 기온 속에 차고 시린 겨울을 보냈다는 의미이고, 추운만큼 쓸쓸했다는 얘기이다.

겨울 나목을 바라보며, 지난봄부터 가을까지 나무에 매달려 노심초사한 과실과 꽃은 맹목이었고, 지금 눈앞에 헐벗은 채 서있는 나무가 본질이었음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난 1년 내내 세상의 많은 것을 욕망했다. 허세를 부리니 번민이 따라다녔다. 아마도 그랬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니 나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욕망한 만큼 가난해졌고 허세를 부린 만큼 난 허탈한 겨울을 보냈다.

지난 해 겨울까지 그랬다.(분명히 과거형으로 적는다.)

이제 내 인생의 팔 할을 키워준 니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인생의 회고록을 쓰듯이 1년의 회고록에도 니체가 빠질 수가 없다. 내게 니체는 육신의 아버지 이상으로 정신적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부터 시작되어진 '니체읽기'에서 내 삶은 눈을 떴다. 니체의 이름이 들어간 책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렸고, 긴 세월동안 니체의 책들을 읽으며 사색했다.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한 세대가 지나도록 따라서 익히며 살아왔다. 니체의 글을 한 구절씩 음미할 때 마다 주체할 수 없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언젠가부터 니체를 범접할 수 없는 철학자가 아니라 친한 친구나 귀여운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나를 발견하곤 스스로 놀랐다.

그는 얼마나 귀여웠던가. 『이 사람을 보라』라는 책에서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를 읽을 때면 혼자 킬킬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마 내 곁에 있었으면 숨이 꽉 막히도록 안아주거나, 마구 뽀뽀라도 해주었을 것이다.

니체 철학의 궁극엔 어린아이가 있었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이요, 망각, 새로운 시작과 놀이이며, 거룩한 긍정'이었다. 니체 철학의 에센스인 '어린아이'는 내 삶의 마지막에 도달해야할 단계였다.

그 층계참을 올해 봄에 탄생한 손주아기가 오르게 해주었다. 생의 순진무구한 긍정, 날 것 그대로의 싱싱한 삶, 사랑의 구체성과 생의 명랑성도 손주를 통해 배웠다. 지난 1년간의 손주육아는 내게 경이로운 철학공부였고, 따뜻한 인생 공부였다.

아기의 생기발랄하고 보드라운 몸을 안을 때마다 내 가슴엔 모유가 돌듯이 옥시토신이 분비되었다. 그 순간이 내 생의 암호가 풀리는 지점이었다.

후회와 회한도 없이, 어린아이의 긍정만 오롯이 남은 겨울을, 난 생애 처음으로 어리둥절하게 아기와 함께 맞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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