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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한전 충북본부 홍보실장

봄 냄새다. 차를 타고 가로지르는 상당산성 우회도로에 화사한 봄 햇살이 비쳤다. 바람 따라 눈가루처럼 흩날리는 벚꽃, 꽃망울 보풀을 내밀자마자 벌써 낙화다. 그 무대책과 하릴없음으로 생의 비의에 젖는다. 봄 속에서 봄이 그리워졌다. 봄의 소리를 들었다. 하얀 눈처럼 나풀대는 꽃잎들의 세례 속에서였다. 자연의 창조 프로그램은 환희이면서 아쉬움이고 그래서 기쁘고, 서러워서 그립다.

생몰미상으로 사라져가는 하얀 봄꽃 속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였다. 몇 번이나 깨어져 버린 점심약속을 이룬 날이다. 서로가 바쁘고 만나는 사람들이 번잡하여 이제야 성사된 자리였다.

다소 울적하고 고독했지만 산나물과 열무김치와 야생 버섯찌개만 있으면 아무 때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격의가 없다는 건 서로 간에 지불할 계산이 없다는 것이다. 생살 부대낄 수 있는 자유로움과 맨몸으로 만날 수 있는 당당함과 싱그러움이다.

내가 살아있는 이 생존의 시간에 몇 명의 사람들과 맑은 소금기 같은 향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나마 난 행운아인 게 틀림없다. 함께 밥 숟가락질을 하는 창밖으로 연둣빛 어린 나뭇잎들이 춤추듯 나부대었다. 봄꽃향기가 입맛을 돋우었다.

우문현답이 오갔다. 많은 말이 필요 없다. 마음으로 공감하고 아파하고 위로했다. 눈빛으로 통했다. 가슴속으로 서로에 대한 응원이 이어졌고 편안했다.

이십대의 치열한 시기를 한 캠퍼스에서 고뇌하고 번민한 사람이었다. 난 정치학을 공부했고 그 형은 불문학을 전공했다. 똑같이 문학평론가 김현을 가까이하고 롤랑바르트를 공부했고 미셀 푸코를 좋아했다. 난 외교관이 되고 싶었고 그 형은 학자가 되려고 했다.

이제 전혀 엉뚱한 길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각기 다른 자리에서 수십 년이 흘렀다. 오랜 기간 동안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혼돈과 미망의 현실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려는 갈망이 서로 이어졌을 뿐이다. 공통분모가 교집합을 만들었다. 문학과 철학을 찾는다는 건 물거품처럼 스러지는 삶의 이 일회성의 허무함을 극복하려는 간절한 몸짓일 것이다. 하릴없이 사라지는 꽃잎들의 단발마에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드는 것이고, 부질없는 현실의 황폐성에 풍요와 영원성의 생명을 불어놓으려는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함께 나눈 점심식사는 소박했으나 충만했다. 생을 향유한다는 건 높은 지위와 많은 돈과 특별한 시간을 필요치 않았다. 서로의 자존감에 대한 존중, 아름다움을 대하는 동질성, 실존적 공허에 대한 따스한 위로로 족했다. 그리고 사랑이었다. 다음 달 괴산의 꽃밭 흐드러진 산을 한번 다녀오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동행해도 좋고 함께 못해도 괜찮은 약속이다. 얽매이지 않을 약속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개나리 노란 꽃가지 산길을 벗어나 도심으로 돌아오니 잠시 동안 꼭 피안에 들었던 것처럼 아득해졌다. 채 일주일도 지탱 못하고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들의 순리를 바라보며 잠시 이런 생각을 했다. '생애 굽이굽이 단애마다, 굴곡진 시간의 흐름마다, 매듭 없이 여유롭게 엮어지는 이런 자유로운 인과(因果)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봄날, 잔잔하게 내리는 빛 속에서 저마다 흔들리는 작은 꽃잎으로 우리가 만났다. 흙냄새 묻은 봄을 나누고 낙화를 바라보았다. 황홀한 개화 뒤에 맞이하는 짧은 낙화,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는 꽃잎들이 나의 의식을 반짝이게 했다. 그래서 지는 꽃이 고맙다. 화려한 욕망이 정직한 외로움과 투명함으로 치환되는 순간, 오히려 사람이 보였다.

이 봄날에 다시금 깨닫는다. 내 속의 단단한 씨앗이 활짝 피어 향기 나는 선명한 꽃 자태가 되는 순간은 너라는 순결무구한 타자(他者)에 당도할 때만 가능한 것. 그때 사람 간에 나누는 인격의 향기가 사랑이 되는 것을, 사람이 사랑이고 사랑만이 이 세상의 해답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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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