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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8.23 18:02:3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장정환

한전 충북본부 홍보실장

내 유년시절 최초의 기억은 공교롭게도 할아버지 장례식 모습이었다. 3살 때였다. 솟을대문을 거쳐 큰 마당을 지나면 높다란 대청마루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 굴건제복을 입고 곡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큰 키와 얼굴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하필이면 할아버지 장례식이 내 삶의 최초의 기억인지 지금도 의아하지만 내 어린 시절에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리라.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전혀 없지만 우연하게 각인된 그 기억이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강한 자각을 준 것은 명백하다. 이 인식은 내 오십 평생을 따라다닌 내 인생의 덫이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철이면 생각나는 또 다른 기억이 있다. 나를 아련한 행복감으로 젖게 만드는 또렷한 영상. 고만고만한 어린애들이었던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을 따라 철길을 걷고 있었다. 원근감으로 가물가물한 철길 끝에서는 아른거리는 아지랑이가 꿈결마냥 일렁였다. 간간이 물길을 따라 부는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게 했다. 뜨겁게 달구어진 강가 조약돌 옆에는 은빛 비늘 같은 물살이 반짝였다. 우리는 깔깔거리며 물장구를 치기도 하고 어항으로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키 큰 미루나무 그늘에서 함께 먹던 도시락의 그 부드럽고 포근한 맛. 저녁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강가 과수원에 들러 잘 익은 복숭아를 한 자루 가득 담아 메고 오셨다. 입 안 가득 고이던 달콤한 복숭아 과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행복의 맛이었다. '아! 참 즐겁구나.'하고 느낀 내 유년의 기억. 삶은 아름답다고 느낀 찬란한 내 유년시절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이 그렇게 찬란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갔다. 삶의 굽이마다 매번 덫이 발에 걸리고 차였다. 사는 일은 살아남는 일이고 경쟁하는 일이고 먹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고 서로 서로 이해관계를 계산해야 되고 몇 푼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 맘 졸이며 한숨을 지어야 하는 일이었으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었다.

정년을 마친 아버지는 그 이듬해 병에 걸려 몇 년간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다. 다음해 아버지 제사를 치르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셨다. 함께 발가벗고 깔깔거리며 장난치던 형제들은 각자의 가정을 꾸린 후 멀리 떨어져 서로의 얼굴보기도 힘들게 되었다.

나 또한 일가를 이루어 객지에서 살아온 지 어언 2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돌이켜보면 내 아버지가 그랬듯 나도 내 어린 아들들과의 행복한 시절의 기억이 또렷하다. 유치원에 보내던 일, 입학식 때 졸업식 때 성장해 가는 통과의례 때마다 그들을 대견해하고 뿌듯해 했었다. 이제 곧 있으면 또 다른 일가를 이루어 독립해 나갈 장성한 자식들을 볼 때마다 내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렇게 덧없이 사라져 간 부모님의 겨우 60여년의 짧은 삶이 날 가슴 저리게 아프게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흙으로 돌아가셨듯이 나 또한 아버지를 흙으로 보내드렸다. 언젠가는 나의 아들들이 나를 똑같이 흙으로 보낼 것이다. 이 영원한 생명의 순환이 날 경건하게 한다. 그 덧없음 때문에 매순간이 귀중하다고 느낀다. 언젠가는 나 또한 사라지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좀 더 충일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일의 덫을 단단한 닻으로 바꾸어 가기를 성인이 된 내 아들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살아가는 동안 행복해 할 일을 스스로 찾지 않으면 오늘의 기쁨과 즐거움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고.

'지금 이 순간도 모두 지나가는 것'이리니 세상에 자만하지 말고 절망하지 않기를, 내일의 헛된 희망 때문에 오늘을 저당 잡히고 유예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도 저 달콤한 복숭아 과즙을 음미하듯이 존재를 다하여 이 순간을 사랑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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