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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6.28 18:09:5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장정환

한전충북본부 홍보실장

오후 내내 러시아 가수 '안나 게르만'의 노래를 듣는다. 창문을 열면 바람 속에서 농익은 여름 냄새가 훅하고 덮쳐온다. 여름은 그 자체만으로 격렬하고 뜨거운 드라마가 펼쳐진다. 오늘은 폭우가 발목을 잡는다. 주룩주룩 장맛비가 쏟아지는 휴일, 창에 어리는 어둑한 습기처럼 본능적인 슬픔이 배어난다. 길고 권태로운 오후엔 이국의 노래를 듣는 것만큼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

러시아의 노래들은 경박하지 않아서 좋다. 푸쉬킨의 나라답게 시적이며 비장한 삶의 깊이가 느껴진다. '이오시프 코브존'의 묵직한 '백학'이 이어진다. 피로 물든 들녘에 체첸의 유목민 전사들이 백학이 되어 날아간다. '라라의 테마'를 듣다 보면 시베리아의 광활한 설원을 횡단하는 열차 안에 닥터지바고와 라라의 우수에 찬 얼굴이 나타난다. 전쟁과 혁명의 굴레 속에서 그 추운 나라의 젊은이들은 무엇을 찾고 무엇을 잃었던가. '모스크바여 안녕히'를 몇 번이고 되풀이 듣는다. 가장 격동적인 80년대를 열었던 노래, 팽팽한 냉전시대에 반쪽만 열렸던 그들만의 올림픽. '안녕히 우리의 사랑스러운 미샤, 수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가세요. 슬퍼하지 마요. 웃는 얼굴로 헤어집시다. 오늘 이날을 기억해줘요.' 올림픽 폐막식에 울려 퍼진 그 노래는 다가올 미래를 예견한 듯 애절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들도 평화와 우정을 간절히 바랐으리라. 결국 그들의 제국은 이후 10년 만에 무너져 내렸다.

'수치트라 크리슈나무르티'의 '아하 아하'는 내가 울적할 때마다 즐겨 듣는 가장 매력적이고 몽환적인 인도음악이다. 가난한 성자와 구도자의 나라, 철학과 종교의 유구한 전통을 간직한 나라, 자동차와 소와 릭샤가 뒤엉켜 공존하는 나라, 갠지스 강가에 목욕하는 힌두교 순례자들이 운집하고, 불가촉천민이 대통령을 지낸 나라이지만 여전히 카스트가 존재하며 마오이스트 공산당이 병존하는 나라. 지금은 친디아와 브릭스로 각광받지만 가장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인 인도. 천의 얼굴을 가진 인도의 얼굴처럼 인도 노래 역시 천 가지의 페르소나를 꿈꾸게 하는 매혹적인 힘이 있다. 인도의 화려한 춤의 여신과 함께 보낸 시간은 폭풍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이제 잉카의 노래를 들을 차례이다. '불붙는 잉카'와 '코시코스의 우편마차'를 재생하면 잃어버린 태양과 달과 돌의 도시, 페루의 마추픽추 대제국이 우뚝 솟아난다. '잉카', 그 단어를 읊조리면 한 많은 생명들로 만들어진 성벽위에 비린 장미꽃의 향기가 묻어 나온다. 안데스 산맥은 태양의 아들들을 지키지 못했다. 죽음과 멸망은 잊혀지는 순간에 완성되는 법. 힘 있는 제국에 짓밟혀 잊혀진 인디오들의 슬픈 삶은 노래로 다시 부활한다. 오카리나의 청아한 음률은 하늘과 닿은 마추픽추 고원의 맑은 바람소리와 결코 시간에 도전할 수 없는 인간 영혼의 시원을 들려준다. 잉카의 노래는 말갛게 정제된 천일염의 투명한 맛이 난다.

여름 빗줄기가 내리치는 창밖으로 바람이 울부짖는다. 하지만 나의 오후는 늙은 여자의 생애처럼 다소곳하고 평화롭다. 돌이켜 보면 찬란하던 시간도 젊음의 미숙한 열정도 생활인의 막막한 무채색 실존도 다 한순간임을 깨닫는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잊혀 지리라······'.

지나고 나면 개개의 삶은 잊혀 지지 않는 몇 개의 풍경만을 남긴다. 단지 날 전율케 했던 몇 줌의 향기, 음악이 흐르던 농축된 시간만이 흔적을 남길 뿐이다. 때때로 사는 게 따분하다고 느낄 때 강렬한 리듬과 에로티시즘에 흠뻑 젖은 정열의 탱고를 들어보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땐 아름답고 슬픔에 찬 집시의 노래를, 뜨거운 정열이 그리울 땐 격정적인 플라멩고를 들어보자. 노래가 흐를 때, 내가 노래를 부를 때 삶은 나와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고 추억이 되고 전설이 된다. 이제 비는 그쳤다. 어디선가 음악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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