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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한전충북본부 홍보실장

"그래서 말이야. 장형 그 K국회의원이 형 친구인데 우리 집 도움 많이 받았지. 내 말이라면 껌뻑 죽어", "새로 온 L검사는 내 중학교 친구야. 나랑은 젤 친했지, 조금 전에도 통화했는데 말이야". 난 두 시간째 남의 말만 되풀이하는 박씨를 멀뚱거리며 바라본다. 하염없이 맥주잔만 기울이고 있다. "박씨, 큰 애는 졸업했나?" 주제를 바꾸기 위해 한마디 건넨다. "그런데 장형 어제 김사장이 저녁먹자고 하는데 내가 시간을 낼 수 있어야 말이지."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제발 진짜 당신 얘기를 좀 해 보라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 이야기를 이 귀중한 시간에 왜 듣고 있어야 하는데······.

나도 가끔은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진짜 삶을 살고 있는지. 매트릭스 안의 네오가 아닌지. 2011년을 살고 있지만 2199년의 인공두뇌를 가진 컴퓨터가 날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Simulacre, 가상, 가짜, 모조)가 아닌지 말이다.

'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말에 내 차를 보여 주었습니다'라는 가당치도 않은 자동차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소비자를 물신주의의 주술에 빠진 광신도로 보는 오만한 광고주를 차치하고라도 허접한 광고를 보고 혹하며 조급해지는 마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장 보드리야르가 '소비의 사회'에서 말했다. '현대인들이 소비하는 것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의 계급질서와 상징적 체계'라고. 물건의 기능이 아닌 상품이 상징하는 위세와 권위, 기호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한 달 내내 아르바이트한 급여를 털어 명품가방 하나 사서 만족하는 세태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 TV로 보여 지는 불꽃놀이는 장관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폭죽쇼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연출한 짝퉁으로 밝혀지면서 중국은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60억 세계인을 상대로 벌인 코미디 같은 사기였다. 결국에는 멋졌다는 그 감흥에 용납되고 인정되었다. 가짜가 진짜 행세하고 진짜가 가짜 같은 세상이다. 원본이 사라진 복제품의 세상. 복제의 복제품의 세상이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 나오는 속물근성에 대한 설명이 짝퉁쇼를 감행한 중국의 경우에 딱 들어맞는다. 하물며 개인 간의 일에는 오죽할까마는. 속물근성은(Snobery)은 19세기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일반 학생을 귀족 자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옆에 적어둔 작위가 없다는 표시였다. 이 후에 속물은 다른 사람에게 지위가 낮으면 무시하고 달리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게 되었다. 권력, 돈, 영향력, 명성으로 상대의 가치를 평가하여 냉대와 아첨이 갈리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상대가 속물인지 여부를 알아보는 일은 재미있다. 위의 기준대로 관찰해 보면 금방 알아 챌 수가 있다. 많은 이들이 지위와 돈의 상징과 기호들을 재빠르게 간파하고 갈구한다. 상대의 지위와 영향력에 따라 태도가 바뀐다, 유명인들의 이름을 팔아 자신을 과시한다. 사치품으로 장식하여 허세도 부린다. 하지만 어느 누가 속물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남들의 경멸을 피하고 더 사랑해 달라고 요구하는 간절한 맘 때문인 것을.

이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봐야 할 거울은 없다. 대신 다른 이들의 욕망과 시선에 맞추려는 쇼윈도만 치장하고 있다. 무수한 가짜 복제품만 표류하는 현대적 삶. 내가 사라지고 타인의 지위만 쳐다보는 자들이 군림하는 사회는 개인의 고유성이 사라진다. 거짓으로 조작된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원본을 찾아야 한다. 원형질의 순수한 얼굴을 회복하는 일은 자신의 존엄과 인간으로서의 근본을 찾는 일. 가짜가 아닌 진짜 삶을 사는 일이다.

지금 사는 이 세상이 가상일지도 모르는 매트릭스 안에서 속물로 살아가는 내가 한심스러워 좀 과장된 엄살을 부렸다. 차라리 니체의 '초인'만 생각하던 젊을 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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