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9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장정환

한전충북본부 홍보실장

사직공원을 산책한다. 오월의 신록이 눈부시다. 은빛 비늘처럼 햇살에 반짝이는 연두빛 나뭇잎들, 살갗을 스치는 간지러운 봄바람에 짜릿한 행복감을 느낀다. 5월의 초록빛만큼 젊고 아름다운 색깔이 또 있을까? 5월의 봄은 생동과 건강성으로 충일하여 내내 황홀하다.

희망에 설레는 5월의 봄을 오십 번을 맞이하고 보냈지만 내 20대 젊은 날의 봄은 암울했다. 1980년 오월,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지금의 서원대학교 전신인 청주사범대학 옆 등교 길에서 총을 든 군인들과 마주쳤다. 교문 앞은 철조망 바리케이드로 막히고 대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내몰렸다. 뉴스보도와는 다르게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들. 불안한 나날이었다. 이후 고향 동네 형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들은 소문이 아닌 사실이었다. 광주 투입 공수 부대원이었던 그 형은 말을 전하며 몸을 떨었다. 서울에서의 재수시절은 최루탄 내음 속에서 학원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 때 가졌던 시대적 불안과 현실정치에 대한 답답한 의구심이 전공을 정치학으로 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대학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당시 금서로 판금되어 몰래 몰래 읽었던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 한완상 교수의 '민중과 사회' 등의 책들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지금껏 받아왔던 거짓된 제도교육, 잘못 알았던 역사인식, 억압과 굴종의 비굴함이 부끄러웠고 억울했고 분개했다. 5월의 축제기간은 사회과학대 건물에서 늘 상주해 있던 정보 형사들 몰래 외신에서 찍은 5.18 광주영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했고 거리로 뛰쳐나가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최루탄에 맞은 학우들이 대학교 정문 앞 논두렁에 쳐 박혀 나뒹굴었다. 여학생들은 콧물 눈물이 범벅되어 울부짖었다. 화염병에 불타오르는 캠퍼스의 소나무들이 당시 우리들의 현주소였다. 암울하고 절망적이었고 미래에 희망이 없을 것 같았던 그 시절, 엄혹한 통제사회 속에서 무기력한 군상들의 숨 막히는 몸부림만 난무하는 듯 했다. 마냥 바라보고만 있기에는 비겁해서 견딜 수 없었던 젊음이었고 그래서 치열한 20대였다. 그 때의 386세대들이 이제 50대가 되었다.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 1987년 6.29선언을 이끌었던 사람들. 그들이 맞이하는 지금의 봄날은 질곡의 역사를 당당하게 정면으로 돌파해왔다는 자랑스러움이 묻어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정체성을 지켰고 80년대 '민주화의 봄'을 온몸으로 함께 행동했다는 동질감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이 봄날, 파릇파릇한 싱싱함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친구들을 바라볼 때면 가슴이 뿌듯하고 대견스럽고 너무나 사랑스럽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을 헤쳐 나온 후에 느끼는 눈부신 감격과 안도감이 날 행복하게 만든다. 2002년 월드컵대회와 촛불시위 이후에 자신만만해진 젊은이들, 그들의 당당한 자신감과 열정, 풍요로움, 매이지 않는 유목민적인 유연함,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가치관과 도전정신, 솔직하게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유로움과 다양한 개성이 우리의 미래를 밝게 만들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세대처럼 암울한 절망을 느낄 필요 없이 그들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단단하고 아름답고 멋지게 구축해 갈 것을 확신한다. 이제 세상은 변했고 그들이 있어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지금 중동에는 쟈스민혁명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튀니지의 젊은이 부아지지로부터 촉발된 민주화의 열망이 중동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다. 30년 전의 우리의 모습이다. 민주주의는 왜 피를 먹고 자라야만 하는지 안타깝다. 희망찬 5월의 봄, 이 땅의 젊은이들이 광주의 망월동 묘역을 한번쯤 찾아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묘지 각각의 사연을 읽다보면 지금 누리는 민주화와 번영의 꽃이 그냥 저절로 피어난 것이 아님을 깨닫는 가슴 아픈 과거를 만날 것이다. 찬란하면서도 가슴 아린 5월 18일. 젊은이들이 바로서야 미래가 진화한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