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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6.19 16:04:14
  • 최종수정2025.06.19 16:04:14
어느덧 망종이다, 하늘은 맑고 쾌청하다. 가게 앞에 있는 커다란 물통에 연잎이 조그맣게 나오다가 이제는 굵고 큰 잎이 나온다. 꽃이 피어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물통이 셋 있는데 하나는 백련 또 하나는 홍련 나머지는 수련이 심겨 있다. 몇 년 전 벽통주를 마시고 난 후 연을 가까이하기 위해 마련하였다. 겨울이 되면 얼어 죽어 양지쪽 계단 밑에 옮겨 놓고 비닐과 담요로 얼지 않게 보온을 한 덕분이다.

연은 다른 식물과 달리 진흙 속에서도 맑고 고운 꽃과 잎을 피운다. 초여름에 연밭의 물이 냄새가 나다가도 꽃이 필 무렵이면 정화 능력 때문인지 내음이 없어진다. 연 줄기 속에는 빈 구멍이 여러 개가 있어 비바람에도, 연잎에 빗물이 채워져도 쓰러지지 않는다. 가지를 치지 않으며, 진흙탕 물속에도 절대 오염되지 않는다. 향기는 멀수록 맑고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라 했다.

6년 전 화실에서 연을 화선지에 그리고 있는데 회원 한 분이 연꽃차를 한 잔씩 나눠 주면서 질문을 한다. "벽통주를 아시나요?" "글쎄요 처음 듣는데요!" "그러면 다음 주에 연꽃과 연잎 그리고 막걸리를 준비해 주실 수 있나요?" "예, 우리 옆 동네에 하얀 꽃의 연밭이 있는데 준비하겠습니다" 홍련보다 백련이 약성이 더 좋고 귀하다며 연꽃차, 연밥, 연수에 대해 설명을 한다. 알고 보니 복지관 다도 강사란다.

비가 오면 연잎은 빗물을 안고 있다가 쏟아내고 채우기를 반복한다. 연잎에 고인 빗물이 '주르륵 주르륵' 쏟아내는 소리는 귀를 즐겁게 한다. 많은 비가 내리면 연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흡사해 감동을 준다. 그러한 날은 나도 모르게 발길은 연밭을 향하게 된다.

연밭에 도착하니 미풍에 흔들리는 연꽃과 연잎은 곱디고운 자태로 반가운 인사를 하는 듯하다. 오롯이 솟은 연 봉우리가 햇빛을 받아 소리없이 피어난다. 갓 피어난 연꽃은 수줍은 처녀의 앳된 얼굴 같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어 정든 님을 만난 것처럼 반기는 연꽃을 대하니 마음이 흔들린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어떻게 꺽을 것인가! 꽃이 아직 피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나. 가슴은 어느덧 두근거린다. 십여 명의 회원들이 학수고대하며 기다릴 텐데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겠기에 미안하다 이해해다오!라며 간신히 떨리는 가슴을 달래며 줄기를 손에 쥐었다. 약속대로 연잎 십 여장과 향을 가득 품고 있는 연꽃 봉우리 한 개를 바구니에 조심스레 담아 화실로 향했다.

회원 모두 기대하는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벽통주를 마시기 위해 각자 연잎 한가운데를 뚫어 속이 비어있는 연줄기와 통할 수 있게 한 다음 막걸리를 부어 벽통주를 시음하기 시작했다. 막걸리와 연 줄기 속의 연수가 어우러져 미묘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한동안 입안 가득 향기롭다. 처음 마셔보는 벽통주에 모두 감탄을 하고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있다. 이 얼마나 기막히게 멋진 풍류인가.

벽통주를 마시는 동안 깨끗한 약수를 살짝 끓인 물에 막 피어나려는 연꽃 한 송이를 담가 놓아 연수가 우러나오게 했다. 연꽃차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연수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연꽃차는 주로 연꽃의 꽃잎을 말려 우려낸 차인데 연수는 생연꽃을 뜨거운 물에 넣어 연꽃 속의 즙과 물이 어우러져 특유의 연의 향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 생소했다. 주의할 점은 연꽃차나 연수 모두 연꽃이 피기 직전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꽃이 피어 벌이 꽃 속의 향을 가져가 버리면 향이 그만큼 덜 하기 때문이란다.

'정좌처 다반향초 묘용시 수류화개 고요히 앉아 차를 반이나 마셨는데도 향은 처음과 같고, 고요히 흐르는 시간에도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는 다시茶時가 떠오른다. 옛날 선비들은 무더운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연밭에 모여 시를 짓고 시조를 읊으며 흥에 겨워 벽통주를 마셨다고 한다. 옛 선비들처럼 풍류의 멋을 알게 되고 시음까지 해보니 배움의 즐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연꽃이 만개하면 문우들과 연밭을 산책하며 시와 수필을 낭독하고 벽통주를 마시며 풍류를 멋지게 즐겨보고 싶다. 지금도 막걸리와 연수가 어우러진 벽통주 향은 내 마음 가슴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가세현

푸른솔문학 신인상

카페문학상. 자랑스런 문인상 수상.

푸른솔 문학회 회원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초대작가

저서: 어머니의 섬 외, 공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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