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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수필가·공인중개사

차고 메마른 바람이 거리를 휘돌 때 그녀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온 것은 뜻밖이었다. 세입자인 그녀와 한집에 주소를 같이하고 있지만 사사로운 이야기를 한번도 나누어 본 적이 없던 터, 마침 손님이 뜸한 시간이라 자리에 앉기를 권하고 일상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야기 몇 마디를 하다 갑자기 그녀가 마음속이 건드려졌는지 울음을 울기 시작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간간이 애써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얼마지 않아 또 입술을 옹 다물며 말을 이어갔다. 아마도 그날은 나에게 눈물을 쏟아내려 작심하고 온 듯했다.

그때 우리 집 4층에 안마시술소가 있었다. 안마사라는 직업은 국가에서 시각장애인에게만 할 수 있게 정해 준 직종이다. 처음 안마시술소를 인수한다고 연락을 해 왔을 때 여느 세입자와 마찬가지로 무심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개업식날 안마사의 아내를 보고 놀랐다. 아담한 체구에 웃음 띤 얼굴인 그녀는 표정이 밝았고, 말씨가 고왔다. 몸이 불편하거나 혹은 그 가족들에게서 보이는 회색빛 그늘이 없었다. 전에 있던 안마사 아내들과는 사뭇 달랐다. 속으로 안마사와는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오래전에 어느 식품회사에서인가, 광고 판매하는 조미료 중에 뛰어난 맛을 강조했던 '핵산 조미료'가 있었다. 사람을 맛으로 비교한다면 그녀는 핵산 조미료 같은 여성이었다. 사람의 모습이 각양각색이듯 인연의 시작도 모두 다르지만, 101호나 202호나 문을 열고 보면 살아가는 태양은 비슷하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마다 한 보따리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일까. 그래도 앞을 못 보는 이와 살고 있는 그녀의 삶은 조금은 더 독특하게 보였다. 과연 그녀는 어찌하여 남편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그녀에게는 분명히 남다른 사연이 있을 것 같아 궁금했는데 그녀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 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중도 장애인이었다. 산업재해인지 모某 회사에 다니다 40대 초반에 시력을 잃어 보상금 한 푼 못 받고 퇴직하였다고 했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가장이 되어 시부모님을 모시고 슬하에 두 자식을 부양하며, 남편의 수족이 되어야 했으니 그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이야기하는 중간중간에 터져 나오는 그녀의 울음을 나는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공연히 상투적인 위로의 말을 해야 그녀 복장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이 그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집에 있고, 그녀는 보험설계사로 취업해서 힘이 들지만 나와 있는 시간만큼은 해방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부부 사이가 애틋한 관계는 아니었어도 가끔 외출하는 자신을 바라보아 주고, 옷의 색상이나 화장의 짙고 옅음을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었다고 하면서 그녀는 다시 눈물을 토해냈다.

용광로의 끓는 쇳물처럼 뜨겁게 한참을 울다, 그래도 "남매가 공부를 잘해요"라고 말하며 돌아갔던 그녀에게서 몇 년 만에 전화가 왔다. "딸이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서 기숙사로 들여보내게 되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시큰해졌다. '겨울은 눈 내리는 밤으로 깊어지고 생生은 눈물의 힘으로 깊어 진다고' 했는데….

자기 어깨 위에 지워진 짐에 짓눌려, 기신起身 못 할 정도로 힘겨워하던 그녀 목소리에 희망이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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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빈 NH농협은행 본부장 "매력있는 은행 될 수 있도록"

[충북일보] "농업인과 고객들에게 든든한 금융지원을 통해 지역금융 전문은행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겠습니다." 임세빈(54) NH농협은행 본부장의 취임 일성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임 본부장은 취임 후 한 달 간 도내 곳곳 농협은행 사무소 현장을 방문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임 본부장은 "농업·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 농촌의 어려운 현실과 더불어 대외경제 불확실성 확대, 경기둔화로 국내 투자와 소비 위축 등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농협은행은 농업인과 고객들에게 든든한 금융지원을 통해 지역금융 전문은행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본부장이 강조하는 농협은행의 운영 방향은 '고객이 먼저 찾는 매력적인 은행'이다. 이를 위해 그는 세 가지 운영방향을 수립했다. 먼저 국가의 근간 산업인 농·축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신규 여신지원·금융컨설팅 등 금융 지원을 확대한다. 이어 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실질적 금융 지원을 강화한다. 마지막으로 고향사랑기부제 등 농업·농촌을 살릴 수 있는 활동을 적극 추진해 도시와 농촌 자본을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