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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수필가·공인중개사

아파트 둘레 벽돌담을 타고 오르던 담쟁이 이파리에 짙은 가을이 내려앉았다. 금요시장을 보고 도서관 정문을 들어서려 할 때였다. 갑자기 "꺄르르"하는 청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주차를 하고 돌아서니, 도서관 출입문 앞 계단에 머리가 하얀 할머니와 대 여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계단 오르기 게임을 하고 있는 중 이었다. 주먹 쥔 손을 내고 보자기를 펼치며 가위도 낸다. 할머니가 이기면 시무룩하던 손자가 자신이 이겼다 싶으면 금세 자지러질 듯한 웃음꽃을 피웠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듣는 해맑은 어린이의 웃음소리는 듣는 이도 흐뭇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지인과 점심 약속시간까지는 두어 시간이 남아 있어서 들린 도서관이다. 젊은 날 쫒기는 마음으로 왔던 도서관, 지천명의 나이에 만학도로서 향학의 불을 원 없이 태워 보았고, 때로 집에서 미처 읽지 못한 묵은 신문을 가방 속에 담아 와서 보기도 했다. 쾌적한 공기와 사철 알맞은 온도, 서고에서 나오는 지식의 향기를 맡다보면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희열감이 차올랐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책을 읽다보면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었고, 아름다운 인생을 발견하기도 했다. 삶의 진실을 배우며 내면에 있는 자신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엽엽하지 못 한 나는 일상이 정체 된 것처럼 답답할 때나 머릿속이 복잡 할 때도 이곳에 오면 마음이 가라앉았고 새로운 기운을 얻어갔다. 도서관 책상 앞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어느 날 휴식을 하러 복도에 나와 있을 때였다. 딸 아이가 아기 때 데리고 다녔던 도서관을 기억하고 꼬막손으로 계단을 짚으면서 올라오는 순간, 나는 큐비트(cupid) 화살에 맞은 듯한 사랑의 기쁨을 느꼈던 곳도 도서관이었다.

언제인가 신문사설에 취업생의 이력서 '취미' 란에 독서라고 쓴 것은 잘못 된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만약 내게 이력서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도서관 이용' 이라고 할 생각이다. 내가 도서관을 방문했던 이유는 고서(古書)나 명저(名著)를 읽기보다 수험공부를 하러왔던 것이 고작인 양심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다르다. 시간의 틈새가 있을 때마다 느긋한 마음으로 와서, 이해하기 어려운 동서고금 명현들의 심전경작(心田耕作)하는 금언도 더듬더듬 읽어본다.

우리나라 도서관은 침묵의 공간처럼 조용하지만 문화가 다른 나라도 있다. 태생적으로 시시비비를 좋아하는 작지만 강한 나라 이스라엘이다. 그들은 조용히 독서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고 한다. 알고 있는 학문을 토론하고 논쟁하여 얻어지는 결론이 학습이고 공부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의 도서관은 언제나 시끌벅적 하단다. 우리나라 국토면적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되고 인구도 적은 나라에서, 문학, 화학, 경제, 평화 각 분야를 망라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나오게 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 온 결과였나 보다.

도서관은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의 정글과 같다. 책꽂이에 차곡차곡 진열된 책은 밀림의 산소처럼, 건강한 문화를 개인과 사회를 위해 제공하고 있다. 요즈음, 시대의 변천에 따라 도서관도 무한 변신을 하고 있다. D 도서관은 정문입구에 '놀자 놀자 도서관에서 놀자' 라는 슬로건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휴게실이 생겼고, 계절마다 유명강사를 초빙하여 문화교실 강좌를 개설하기도 한다. 음악회를 열기도 하며, 영유아를 위한 자료실과 애기와 함께 온 엄마를 위한 수유실도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아예 도서관 한켠을 쉼터로 마련하여 주민생활과 밀접한 복합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한다고 했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 세월의 흐름을 도서관 계단 오름에서 느껴본다. 가뿐하게 오르내렸던 발걸음이 엘리베이터를 찾게 되지만, 영혼을 정화 시켜주는 산소를 마시러 다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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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