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신현애

수필가·공인중개사

지인이 아들 이야기를 했다. 아들의 친구가 결혼을 하는데 결혼자금과 신혼집 전세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며 '그 애 아버지는 뭘 하고 살았데요?' 라고 묻더란다. 아들은 아비 덕에 별로 어려움 없이 자란데다 외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하드라도 자금 걱정이나 신혼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입장처럼, 남들도 그런 줄 안다고 했다. 우연히 터진 아들의 못 마땅한 점을 이야기 하며, 화장실에 갈 때도 두루마리 화장지를 손목에 깁스(gibbs)하듯이 둘둘 풀어 쓴다고 했다. 휴지를 사용 할 때도 곽 티슈를 폭 폭 폭 한꺼번에 몇 장을 뽑는다고, 한 칸이라도 한 장이라도 아껴 쓰라는 아비의 말을 귀 밖으로 듣는다고 하며, 아껴 쓰지 않는 아들과 함께 애먼 화장지까지 원망을 했다. 술술 풀려 나오는 것이 매우 언짢다고 하며 매사를 절약하고, 마디게 살아온 지난 세월과의 괴리감으로 저으기 참아왔던 속내를 풀어 놓았다.

문명의 발전은 용변을 처리하는 화장지 문화에도 많은 변천을 가져왔다. 어렸을 적, 푸세식 변소에서는 뻣뻣한 종이를 손으로 비벼 부드럽게 해서 사용했고, 좀 더 진보 된 휴지는 신문지였다. 그때 비하면 지질(紙質)의 차이도 현격하게 좋아져서 옛날에는 호텔에서나 쓸 수 있었던 고급화장지가 지금은 어디를 가나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오래 전,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여성학교수가 우리는 너무 쉽게 화장지를 사용한다고 했다. 화장지 한통을 만들려면 30년 된 나무를 몇 그루를 잘라야 하는지 설명하며 우리의 낭비성을 개탄하고, 독일인의 검소함과 절약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말이 떠올랐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더러움이나 지저분한 것을 지울 때 사용하던 휴지가 이사한 집을 방문할 때, 우선 지참하게 되는 생활용품이 되었다. 휴지 심에서 술술 풀려 나오는 화장지처럼, 하는 일이 잘 풀리고 세제의 거품처럼 좋은 기운이 문실문실 살아나기를 바라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이유로 나와는 본의 아니게 아주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집을 중개했을 때, 이사 날을 알려오면 의례 화장지와 세재를 준비했다.

내가 집을 짓고 이사를 했을 때도 지인들이 사온 화장지와 세제가 방 하나를 가득 채웠다. 그 기운을 그대로 담아 오려고 아파트로 집을 옮겨 올 때도, 값나가는 가구는 두고 오면서 화장지와 세재는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가져왔다.

얼마 전 에 아주 잘 풀리는 집을 다녀왔다. 그 집을 들어섰을 때 넓은 마당 양옆으로 도열하듯 금화규 꽃이 줄지어 있었다. 아직 서리가 내리기 전이라 손바닥만 한 꽃은 소담하기 그지없었다. 황금 해바라기라고도 불린다는 이 꽃은 하루살이인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것이 아쉬웠으나, 마디마디 새부리 모양으로 생긴 꽃대에서 계속 이어져 핀다. 바람에 걸리지 않으며 술술 풀리는 집안의 가운(家運)을 잘 '이어 받고, 있는 뜻'을 담은 꽃이 아닐까 하고 나름 생각 해 보았다. 흔히 이루기(成) 보다 지키기(守城 )가 더 어렵다고 한 말이 있는데 이 자손은 선대에서 이뤄 놓은 가업을 지키기 뿐 아니라, 아버지가 닦아놓은 터전에 자신의 사업이 날로 번성하게 하고 있는 중 이었다.

어리석은 사람도 머물다 가면 지혜로워진다는 지리산, 산자락 몇 줄기를 차지하고 있는 부지와 건물, 수 만평에 달하는 곳 어디에도 허툰 곳이 보이지 않았다. 계곡에서 나는 물소리가 없었고, 자그락자그락 자갈밭을 밟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뜬뜬한 암반이 깔려 있는 뿌리 깊은 나무에 무성한 가지를 연상하게 하는 형국이었다. 무엇으로도 요동 할 수 없는 힘으로 받쳐있는 집, 누가 이곳에 와서 '척'을 하고 '체'를 하랴. 한 인간의 힘이 이렇게 창대하게 휴지 심에서 술술 풀려 나오듯이 뻗어 나갈 수 있음에 가히 놀랄 뿐이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재황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장 인터뷰

[충북일보]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이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메카인 충북 오송에 둥지를 튼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은 지난 10년간 산업단지 기업지원과 R&D, 인력 양성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토대로 제2의 도약을 앞둔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이 구상하는 미래를 정재황(54) 원장을 통해 들어봤다. 지난 2월 취임한 정 원장은 충북대 수의학 석사와 박사 출신으로 한국화학시험연구원 선임연구원, 충북도립대 기획협력처장을 역임했고, 현재 바이오국제협력연구소장, 충북도립대 바이오생명의약과 교수로 재직하는 등 충북의 대표적인 바이오 분야 전문가다. -먼저 바이오융합원에 대한 소개와 함께 창립 10주년 소감을 말씀해 달라. "충북바이오산학융합원(이하 바이오융합원)은 산업단지 기업지원과 R&D, 인력양성이융합된 산학협력 수행을 위해 2012년 6월에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바이오헬스 분야 산·학·연 간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창업 생태계 조성과 기업성장 지원, 현장 맞춤형 전문인력 양성 등의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충북 바이오헬스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부 재정지원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