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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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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어느 계절보다 기온의 변화가 크고 빠르게 진행되는 가을이 오면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장롱 속의 솜이불을 꺼낸다. 어린 시절 아랫목에 깔린 솜 포대기는 시린 손을 녹여주는 따듯함이 있었다. 언제나 이맘때쯤이면 어머니는 광목에 풀 먹여 손질한 새 이불을 꺼내 덮어 주셨다. 새 이불은 버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고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오빠 동생과 함께 잠자리에서 이불싸움을 할 때 손에 잘 잡히지 않아서 싫었다. 그런데 잠재돼 있던 익숙함이었을까. 언제부터인지 내가 이불 홑청에 풀을 먹이고 있었다.

주택에 살던 어느 날 옥상에서 동갑내기 이웃을 만났다. 빨래를 널던 그녀가 풀 먹인 이불 홑청을 걷고 있던 내게 "보기보다 촌스럽게 산다"고 말했다. 그것은 아직 침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불 홑청을 손질한다는 나의 말을 듣고 한 말이다. 세 칸인 방 모두를 침대로 꽉 채우기 싫어서 안방은 내 마음대로 요를 깔고 이불을 덮는 생활을 해왔다. 홑청을 시치다 바늘에 찔리기도 하는 서툰 살림솜씨에도 불구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이 일을 습관처럼 했다. 그건 깨끗하게 손질된 이불에서 나는 풀 냄새가 좋았고 발끝에 닿는 가슬가슬 한 감촉은 수고로움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수년전 침구류와 관련 된 사업을 하는 지인 덕분으로 혼수를 장만하듯이 이부자리를 모두 교체했다. 눌려진 솜을 햇 목화솜으로 이불과 요를 만들고 베개 속에는 새 메밀껍질을 넣어 보강했다. 잘 말린 들국화 꽃송이를 넣은 베개에서 맡아지는 향기는 나를 행복한 잠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런데 2년 전 아파트로 이사 온 뒤 나를 행복하게 했던 이불과 요의 필요성이 많이 떨어졌다. 아파트 문화라는 것이 일단 우리 집과 같은 장롱이 아니고 그 속에 켜켜이 쌓인 이불도 없다. 내게 그토록 평안함을 주었던 이불과 요가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이 생뚱맞아 보였다. 같은 사물이라도 장소에 따라 이렇게 느낌이 달라질 줄이야…. 새 집을 짓고 몇 달 발품을 팔아 장만한 장롱과 이불 그리고 한 박자 느린 사용자는 촌스러운 3종 세트가 됐다.

뜻밖의 사고로 보름 가까이 병원생활을 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담당의사는 낮은 자세로 엎드려야 하는 방바닥 생활보다 적당한 높이의 침구사용이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인근도시 백화점을 순례 해 보았지만 결정하지 못 했을 때 딸아이는 00 박사가 연구·제작한 매트리스라며 솔향기 폴폴 나는 프레임을 맞춰 사왔다. 첫날은 새로운 기분에 젖어 몰랐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잠자리가 불편했다. 오른쪽 왼쪽으로 뒤척이며 잠을 자고 나도 몸이 찌뿌둥하고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수맥일까' 생각 해 보았지만 예전과 똑같은 자리라 그럴 리 없다. 며칠 지나면 익숙해지리라 기대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나름 "거금을 들였다"는 딸아이의 성의를 봐서 라도 적응해야 했고 까다로운 아이처럼 보일까봐 참아보려 했으나 안 되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갈 즈음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한밤중에 일어났다. 장롱의 요를 꺼내 매트리스 위에 펴고 누웠다. 옥상옥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이튿날 이상하리만치 전신이 편안했다. 오랜만에 숙면을 하고나니 정신도 맑고 몸도 개운했다. 언젠가 TV에 출연한 정신과 의사가 한말이 생각났다. 상처한 그에게 방청객이 "왜 재혼을 안 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익숙해지기 어려워 못 한다"고 대답했다. 사람이고 사물이고 익숙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익숙해지면 또 그보다 편할 수가 없다. 누가 좋은 주거환경에서 촌스럽게 산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대로 익숙함의 평안을 즐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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