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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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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녘, 나뭇가지에 찢어진 비닐 한장이 걸려 있다. 풍향계 인 양 비닐 조각을 보며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 해 본다. 완연한 봄 인 듯 함에도 아직 몸이 사려지는 것은, 어느 해 였던가 사월의 추위가 생각나서이다. 임대 아파트 주민이었던 그녀가 요양병원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곧 문병을 가지 못했다. 세계 대유행인 바이러스의 창궐이 원인이었고, 그때쯤 나에게도 변고가 있었다. 시장을 다녀오던 중 총총 걸음이 엉켰던지 현관 앞에서 고꾸라져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순간에 일어난 일 이었으나 콘크리트 벽이 물컹 들어갔다 나온 느낌을 받았다. 진료를 한 의사는 목뼈에 금이 갔다고 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는 말을 듣고 한발짝 앞이 저승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건강하셨던 노인이 어느날 갑자기 '목욕탕에서 미끌어졌다'거나 느닷없이 '넘어져서 허리를 다쳤다' 는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목 깁스를 하고 봄·여름을 집콕하며 보냈다. 내몸이 성치 않으니 세상사 모두 흥미가 없었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병원은 미리 전화를 해 놓았지만 한쪽 문은 닫힌 채 일일이 문병객을 통제 하고 있었다. 방문자 명단에 서명을 하고 3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요양 보호사가 밀고 나오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녀는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과 비대했던 몸집도 다소 줄어 든 듯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휠체어만 아니라면 오히려 건강이 한결 좋아보였다. 우려했던 거와 달리 대화가 되었고, 오전과 오후에 3시간씩 물리치료를 받는다고 하였다. 오래 된 친목 모임의 총무였던 나는, 문병이 늦어진 이유와 회원들의 소식을 알려주며 병원에 오게 된 이유를 물었다. 이웃끼리의 분쟁을 중재하려다 쓰러졌다고 했다. 지금은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려고 한다며 퇴원하면 조용한 시골에 가서 노인들에게 공해가 적은 농산물로 음식 봉사를 하면서 살겠노라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과 꿈을 말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수의 오기(傲氣)처럼 '나 아직 살아 있어' 하는 결연함이 보였다.

그녀는 참 억척스럽게 살았다. 공무원이었던 남편과의 사이에 쌍둥이 딸을 포함 오남매를 두었고, 그녀도 식품영양사로 학교 급식소에 근무했다. 부부가 받는 월급이 솔찬했을텐데도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었던지 공직을 그만두고 도배하는 일을 배워 공사현장을 다녔다. 때로 이웃이나 알음알음으로 들어오는 일은 밤에도 했으니 봉급생활자 보다 수입은 훨씬 나았으리라. 쌍둥이 자매를 등교 시킬 때는 짐자전거 뒷자리에 나무 빨래판을 얹어놓고 그위에 좌우로 두딸을 앉혀서 학교에 데려다 주고는 하였다. 그녀 만큼이나 노쇠 해 보이는 지프jeep는 시동을 걸 때마다 '크럭 크르릉' 하는 소리를 냈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트롯 메들리를 듣는데는 이상이 없었다. 언제나 차 안에는 풀통, 사다리 나무받침대 자 그리고 벽지와 종이 뭉치등이 너저분하게 실려 있었는데. 그렇게 땀이 절게 벌어 모은 돈을 지인에게 빌려 주었다 떼여서 속을 태우기도 했다. 일용 노동자처럼 옷에 풀칠과 머리에 먼지를 묻힌 채 일하다가도 모임날엔 단정한 차림을 하고 참석을 했던 맹렬 여성이었다. 열심히 사는 모습에 우리는 응원을 했고 가끔 노래 방에서 기분을 풀고는 하였다.

어느 누가 자기 삶에 혼신의 힘을 쏟지 않는 이 있을까만은 그녀는 안팎으로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 그녀가 이제 기본적인 생리현상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2시간의 면회시간이 끝나고 보호사가 휠체어를 밀고 들어갈 때 부디 지난날 종횡무진 했던 그녀의 건강이 되돌아 오기를 바라고, 영절스러운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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