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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참으로 먹먹한 날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주변의 지인들이 하나 둘 떠나고 있다. 사람 사는 게 뭐 특별한 일 있는가. 그저 열심히 한세상 잘 놀다 가면 그만인 게지. 무얼 바라며 살아온 것도 아닌데 새삼 작아지는 내 모습이 서럽다. 요즘은 바깥을 잘 나서지 않지만 상사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얼굴이라도 보려고 빼먹지 않고 다닌다. 오늘도 장례식장에 들려 돌아서는 길에 하늘을 보았다. 노을 진 하늘의 묵직한 구름만 텅 빈 거리에 바람 되어 내려앉는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멈추게 한지 벌써 한해를 훌쩍 넘었다. 이 와중에 일을 놓고 난 후에는 내 속의 화만 키우며 자신의 이기적 정당성에만 매달렸다. 참 부질없는 모습이었다. 요즘은 집에서 삼시세끼 꼬박 해먹는 날이 수북하다. 매주 시장을 보고 냉장고에 먹거리를 채워놓을 때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오늘도 시장을 보았다. 콩나물이며 감자며 각종 반찬거리와 큰맘 먹고 간 고등어 한 손과 고기 한 칸도 끊었다. 그러다 마트 한편 수북이 쌓여있는 봄동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지인들과 만나 수다 떨다 봄동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오늘 그를 맞이한다.

음식은 기억으로 먹는 것이라 했던가. 어디 음식뿐이랴. 사람 사는 게 기억되어지는 것이고 그게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아직 제대로 겉절이 담을 줄도 모르는 어설픈 주부인 나에게 묘한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몸에서부터 상큼하고 고소한 봄동 겉절이가 당겼다. 배추 같기도 하며 못생긴 꽃 같기도 한 봄동을 집어 들었다. 기본적인 액젓과 각종 양념은 이미 집 찬장에 있기에 용기를 내 첨으로 겉절이를 시도한다. 제멋대로 뻗친 잎사귀를 다듬고 수돗물에 서너 번 뽀득뽀득 씻긴 다음 소금으로 한소끔 숨을 죽인다. 각종 양념과 참기름, 식초, 매실 청을 넣고 약간의 깨소금을 뿌려주면 맛있는 봄동 겉절이 완성이다.

입안에 착 감기는 봄동이 황홀하다. 척박한 겨울 들판에서 힘겹게 자라난 강인한 생명을 우걱우걱 씹는다, 입안에서 툭툭 불거지며 온 몸을 감싸는 향이 새롭다. 얼마나 경이로운 맛인가. 살며 우울하고 늘어진 회색빛 일상에 초록의 힘을 느낀다. 저 멀리 들판에서 차갑지만 부드러운 바람이 입안으로 불어온다. 섬세하면서도 알싸한 그러면서도 달달한 생명의 노래를 맞이한다. 나는 지금 봄의 정원에 나와 있다.

우리는 살며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끌리는 일들을 허다하게 경험한다. 그게 사는 것이고 인생일 것이다. 이러한 끌림은 항상 스스로를 긴장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하는 것도 이런 끌림이 아닐까. 그냥 좋아지는 것이 날 것 같은 가장 신선한 것이 아닐까. 나 스스로에게 먼저 나누고 나에게 다가오는 신비한 생명의 끌림을 맘껏 누리는 것, 그것이 창조하는 것이고 자기 혁신하는 것이 아닐까. 음식을 하는 것도 이런 창조의 작업인 것이다. 봄동을 해 먹는 일도 그런 것이다. 어디 이 뿐이랴. 봄동으로 면역력을 키우는 것도 자기 방역이리라.

봄동으로 식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산책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언제부턴가 스스로에게 갇혀 살던 아픈 겨울의 끝이 서서히 끝나고 있다. 아직은 춥고 스산한 날들이 많지만 저 멀리 산 빛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초록의 새싹들이 움트는 기지개 소리가 들린다. 어제보다 한결 부드러운 바람이 햇살에 비껴 잘게 부서진다. 이렇게 봄이 소리 없이 내 가슴에 스며든다. 이제 서서히 일어설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스러져 있는 것들에 대하여 먼저 손 내밀어 함께 일어서야 한다.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이지만 함께 하고 기억되어지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 살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이러면 되는 게지. 뭘 더 바랄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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