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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요 며칠 봄비 치고는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렸습니다. 답답하고 힘든 황사와 미세먼지에 지친 하늘에서 반짝이며 비가 내렸습니다. 이맘때면 가뭄에 힘들어하던 들판에도 짙은 땅 내음 내며 춤추는 풀들이 생명을 노래합니다. 나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혼자 떠들고 있는 TV를 잠시 끄고 창문을 열어 비가 주는 시원함을 느끼곤 합니다. 살면서 지금껏 큰 과오나 병치레 없이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봄날 추적이는 빗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누이는 것도 어쩌면 행복입니다.

봄비처럼 이 나라에도 따뜻한 생명의 빛이 내립니다. 남과 북에도 봄비가 옵니다. 참 평화롭습니다. 어쩌면 지금껏 우리는 이 봄날 같은 화해의 날들이 우리에게 다가섬을 수없이 망설여 왔습니다. 스스로가 이념의 견고한 성에 갇혀 세상의 변화와는 담을 싼 채 서로에게 삿대질하며 많은 생채기를 냈습니다. 빗소리에 섞여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거셀수록 창에 매달린 낙엽들은 깊이 엎드려 있습니다. 스스로가 살아왔던 습속들을 그리 쉽게 걷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봄비에 젖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비는 그들이 흘러 만날 곳을 압니다. 비는 더러는 대지에 내리기도 하지만 바람 위에도 내리고 우리 가슴 속에 난 상처 위에도 내립니다. 그리고 함께 뒤엉켜 큰물을 이룹니다. 나는 이 비가 우리의 머리 위에 축복처럼 내리기를 바랍니다.

꽃이 핀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지요. 이러한 봄비 같은 소식 이면에 수없이 쏟아지는 사건과 사고들을 보면서 아직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천박한 모습들에 측은한 생각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가진 자들의 갑질이, 권력과 지위를 내세운 자들이 힘 없는 서민들을 무시하고 빼앗고 한 일들이 어디 한두 번 인가요. 그리고 아무리 선거철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됐다고 벌써 촛불의 정신을 망각한 몰지각한 행태들이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적폐지요. 이렇게 자기 아성에 빠져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군상들을 봅니다. 아직 더 많이 이 사회가 아파하고 싸워야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념의 벽을 넘어서, 차별의 골을 넘어서 모두 하나로 묶는 것에는 문화예술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예술은 서로의 차별을 극복하고 서로의 갈등을 무루 녹이는 힘이 있습니다. 인종의 구분을 넘어서고 갑과 을의 갈등을 넘어서고 노소의 간극을 넘어서고 빈부의 격차를 넘어서는 것,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배려와 존중이 전제된 것, 바로 그 것이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동이라는 것입니다. 이 감동의 물결이 넘실대는 사회가 행복한 세상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 누구에게나 소중한 사람이고 서로 손잡고 가야할 사람입니다.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내가 아픈 만큼 상대도 아파해준다면 우리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에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꽃이 지면 지는 꽃 저 멀리서 다시 꽃이 핍니다. 봄비에 젖어 떨어지는 꽃잎은 또 그렇게 자기 몫을 하고 가는 것입니다. 장강의 물결도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 세대가 엄혹하게 살아온 것을 다시 후손들에게 답습시키지는 말아야지요. 대결과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이 평화와 화해의 장소로 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봄을 기다려 본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봄비처럼 우리에게 내리는 이 평화의 향연을 스스로가 맘껏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모두에게 평등한 비, 모두에게 하나인 비, 미래를 꿈꾸고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는 그런 비가 우리에게 내립니다. 봄비는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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