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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문화예술팀장

 나는 요즘 같은 살얼음 날씨가 좋다. 조금은 까슬까슬한 바람이 불때마다 스스로가 긴장되는 모습이 너무 좋다. 봄기운에 밀려 떠나가는 아련한 겨울 알갱이들의 긴 여운이 진저리치듯 몸을 긴장시킨다. 밝은 햇살과 따뜻한 바람이 일렁이고 미세먼지 사이에도 가끔씩 열리는 노을 빛깔의 하늘이 드리울 때면 '참 예쁘다'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가슴 속에 남은 차가운 미련이 먼지가 돼 풀풀거려도 땅 속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촉촉한 물기를 맞이하는 삶의 한 조각은 깊은 생명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드득 바람 불더니 먼저 핀 동백이 지고 있다. 한겨울 나를 위안해 주던 동백이기에 바닥에 핀 그 꽃이 더 아름답다. 들판엔 산수유며 매화들이 얼음 알갱이를 품은 꽃망울을 터뜨린다. 발밑 복수초는 당당히 노란고개를 내민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풀 섶 깊숙한 곳에서 작은 들꽃들이 낮은 저음으로 노래한다. 봄의 오케스트라가 울려 퍼진다.

 눈부신 기쁨을 피워내는 것이 바로 봄이고 꽃이다. 우리에게 봄은 그런 것이다. 살아있음이 가장 빛나는 때가 봄이다. 아무리 돌이켜도 생명의 힘을 이길 수는 없다. 봄은 찬란하지만 그 안에 절망과 슬픔, 인내와 고통을 품은 채 피어난다. 봄은 저절로 일어서지 않는다. 그 아픔을 극복하고 기억해 내는 것에서 봄은 우리에게 희망을 찾는다.

 살며 누구나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주위를 돌아보아라. 어찌 사람 사는 곳마다 가슴 아프지 않은 사연을 가진 이들이 어디 있으며, 아무리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아픈 눈물이 없는 이들이 어디 있는가. 우리들 누구나 아프다.

 봄은 더 하다. 이런 긴 기다림의 봄날에 서로가 생채기를 안아주고 챙겨주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인가. 상처투성이의 얼굴들을 마주하고 거칠어진 손마디로 얼굴을 감싸주며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는 없는 것인가. 세월이 흘러 어제 같은 오늘이 수없이 온다 해도 그 오늘은 어제가 아니듯 바람 같은 세월에 흐르는 계절을 마냥 쳐다볼 수는 없는 것이다. 꺼져가는 양심을 다시 일으키는 용기가 필요하다. 매일 누리는 세상에서 아지랑이의 냄새를 간직하며 살아야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 지금 봄이다. 그래서 봄은 아픈 기억이다. 어쩌면 봄은 잊히는 것들과의 싸움이다. 슬픔을 가슴에 묻고 마음으로 피워내는 꽃들이 봄이다. 그리고 우리는 저 꽃들의 아름다움에 결코 마음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 비겁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숨어 살아온 자신을 뒤돌아보아라. 저 꽃핌의 이면에 애끓던 날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세월 속에 가만 고요히 머물고 있는 증오가 아니라 잊지 않음과 간절한 그리움으로 영원히 간직하는 것이다. 느끼고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이 봄이다. 결코 타협하지 않고 내 안에 있는 한줄기 진심의 빛을 찾아가는 여정이 봄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봄은 바람처럼 천천히 온다.

 오늘 아침 세상은 다시 겨울이다. 꽃샘추위다. 밤새 투정으로 비바람이 불고 총총히 떠나던 겨울이 뒤 돌아 보는가 보다. 그러나 피어나던 꽃들은 결코 숨지 않는다. 우리의 봄은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이 아닌 새롭게 일어서는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은 날갯짓들을 하며 함께 침몰된 세상을 새롭게 인양하는 찬란한 눈부심의 날이다. 그리고 우리의 봄은 부재의 슬픔을 견뎌내며 서로에게 따뜻한 눈물 한줄기 건네는 진심이다. 우리의 봄은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이 악물고 울음을 삭히는 것이다. 어찌 꽃이 핀다고 웃을 수 있으며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을 수 있는가. 이 세상 살면서 지금이 최고의 날들이 아닌가. 내 삶의 가장 아름답고 정직한 날, 지금 봄이다. 햇살이 눈부시다. 봄이 일어선다. 가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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