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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올해는 유독 봄이 먼저 왔다. 예년과 달리 진달래며 개나리, 매화, 벚꽃들이 서로 앞질러 피었다 지고 있다. 오월이 되어 거리에 서있는 이팝나무도 향기 없는 꽃들을 수북하게 내려놓고 푸르른 잎으로 갈아입고 있다. 벌써 반팔의 소매들이 간간이 걸어 다닌다. 그러나 가만 바라보면 표정 없는 얼굴에 마스크를 두르고 그저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며칠 있으면 5.18 민주항쟁 기념일에 부처님 오신 날인데 전염병의 힘든 세월에 묻혀 모두 가슴의 꽃을 길거리에 떨어뜨리고 있다.

나는 매년 오월만 되면 눈물을 달고 사는 날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광주에서 스스로가 겪은 일은 하나도 없다. 그저 젊은 시절 신문기사에 난 보도와 비디오, 현장사진을 통해서, 그리고 몇몇 집회에서 함석헌 선생과 문익환 목사, 백기완 선생의 피 토하는 진심을 만난 게 다였을 뿐이다. 그 당시 교회나 성당에 기대어 집회라는 형식으로나마 가슴 속 분노를 표출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었다. 그저 두려운 마음이 앞섰으나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광주에 대한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막연하지만 진심으로 조국과 민중,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안고 살았다. 그렇게 조금씩 민주화의 길에 발을 디뎠다.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전쟁으로 죽은 자들을 추모하며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때로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남겼다. 내가 민주주의가 목숨을 건 싸움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한 것은 바로 광주의 절망 속에서였다. 막연히 알던 광주의 진실 속에 수천의 피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을 안고 아파했던 그날이후 조직을 만들고 사회과학 서적을 뒤적이며 강의실 보다는 교정에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리고 경찰서를 제 집 드나들듯하며 결국에는 영어의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냈다.

최근 미얀마에서 벌어진 군부쿠데타와 이에 항거하는 미얀마 민중들을 보며 너무도 닮은 광주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두려운 마음으로만 미얀마를 이해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벌써 1000여명에 달하는 젊은이와 어린아이들이 시위현장이나 길거리에서 학살당하고 있다. 이러할 때 나는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아 관련된 글에 '슬퍼요' '화나요'를 누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뿐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미얀마에 갈 수도 없지만 나조차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조차 침묵하고 무관심하다면 그날 오월에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피투성이 싸움에 눈감고 있던 미국의 행태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한국의 민주주의 성과물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의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일은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보다 더 지독한 것이다. 우리가 걸어온 민주화의 길은 어쩌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에게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게 하는 또 다른 길을 안내하고 있다. 또 다른 광주의 고립을 우리가 나서 막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우리가 먼저 군사독재의 폭력과 탐욕에 무참히 당한 아픔을 두 번 다시 겪게 하지 않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부처의 길이 아니겠는가.

오월, 부처님 오신 날 즈음에 우리 모두 마음의 연등을 밝혀야 한다. 문명의 오만과 폭력이 가져온 이 재난의 시대에 우리 스스로를 뒤돌아보고 성찰하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 오월 광주는 군사독재에 대하여 항거한 역사적인 사건이며 이를 극복하는 해법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촛불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함께 나누어야 한다. 진정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짙은 어둠을 지내고 맞이하는 황홀한 아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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