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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봄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 택배보다 더 먼저 배달된 새소리가 게으른 나의 문을 사정없이 두드린다. 창을 열면 젖은 안개 사이로 희뿌연 초록의 가지들이 언뜻 흔들리며 손짓한다. 멀리 산수유며 동백, 버들가지, 매화가 잎을 뾰족이 내밀며 바람에 흔들린다. 담벼락에 낮게 깔려 고개 내미는 민들레며 상사화가 잘 살고 있다 손짓한다. 그 먼 바람 길을 훠이 돌아 이제야 소리 없이 꿈틀대는 황홀한 날갯짓, 시간의 투명한 그리움을 눈부시게 바라본다. 봄은 그렇게 훅 내 삶에 들어왔다.

지난해 나는 코로나와 실직 속에서 세상에 대해 마음을 굳게 닫았다. 변하지 않는 타성의 집단에서 버텨내기가 많이 힘들었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벼랑에 선 느낌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나를 버리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 생각했다. 참 이기적이고 어리석었다. 그렇게 내 안에 나를 가두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원망을 안주삼아 잔기침 몇 번, 술 몇 모금으로 혼자서 토닥거리며 살았다.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여 견뎌내야 하는 날들이었고 저 스스로를 돌아보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멈추었고 내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럽고 아픈 날들이었다.

무기력한 날들에 잠겨 몇 번인가 허겁지겁 잠에서 깨었는지 모른다. 알 수 없는 깊이의 어둠 속 둥둥 북소리가 파장을 일으키며 가슴을 두드렸다. 실눈을 떠 사방을 바라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 이게 죽는다는 것인가. 무서웠다. 그러다 낮 익은 얼굴들이 다가오더니 희미하게 멀어진다. 실크로드 그 먼 길 석굴 속에 그려져 있던 수천의 보살들이 보였다. 한참을 그렇게 허둥대고 있을 때 눈앞에 새 한 마리 날아왔다. 고요하고 낮게 깔리며 비행하던 새는 금시 하늘로 솟아올랐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 위에 하얀 꽃잎이 수없이 흩날렸다. 그리고 그 꽃잎을 잡으려 손을 뻗다 잠에서 깨었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가.

시간을 알 수없는 아침마다 밤새 뒤척이다 난 상처를 바라보는 것이 아프고 힘겨웠다. 살며 이렇게 마음을 잡을 수 없을 때마다 시간의 야수성을 방치하며 수염을 길렀다. 많은 날들을 그렇게 살았다. 요즘은 밖에 나갈 일이 별반 없다는 핑계도 있지만 수염 듬성한 얼굴이 마스크에 가려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수염 기르기 놀이도 언제부턴가 게으름에 젖는 것 같아 약간씩 시큰둥해 졌다. 내 사는 모습이 바보 같았다. 오늘은 거울 앞에서 얄팍한 엄숙함이 수북이 쌓여진 턱의 수염을 가지런히 면도한다. 오랫동안 꼭꼭 싸맨 생채기의 각질들이 부스스 마른 풀잎처럼 세면대 위로 부서져 내린다. 아무 일도 아닌데 저 혼자서만 애쓴 것 같았다. 어쩌면 봄은 진지한 다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바람처럼 가벼워진 마음에서 오는 것이리라. 거울에 반사되는 백열등에서 하얀 꽃잎이 머리를 치며 날아오른다.

우리는 늘 길 위에 서 있다. 봄도 길 위에 피어난다. 이렇게 봄 햇살 예쁜 날에는 가끔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무엇인가에 홀려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길을 가곤 한다. 그것이 인생인 것이다. 삶은 순간마다 스스로 선택하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 봄은 누구에게나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삶의 과정에서 저마다 차별적으로 오는 것이다. 그것은 과하지도 않으며 바람처럼 가볍게 다가오는 것이다. 봄은 나무에도 있고 돌에도 있다. 하물며 사람에게는 어떠하랴. 저 스스로를 아프게 견뎌내고 난 다음 봄은 소리 없이 맑게 피어난다. 우리의 봄은 고단한 날들을 잘 견뎌 내느라 수고한 자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것이다. 봄은 나에게 그렇게 왔다. 살갗을 스치는 봄 냄새가 사무친다. 봄, 빛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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