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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예술교육팀장

해거름이 되니 구겨진 바람이 부쩍 차가워졌습니다. 첼로의 낮은 빛깔로 떨리는 낙엽이 가슴에 떨어집니다. 살아가는 것이 세월에 떠밀려가는 것임을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너무 아픕니다. 저 혼자의 생각으로 억지를 부려보지만, 매번 그렇게 지고 말았습니다. 비 오는 거리에 빛마저 산란하게 흔들립니다. 어쩌면 삶은 한바탕 꿈일지도 모릅니다. 서성이며 머물다 그렇게 가버린 희망의 날들이지요. 지금 짧은 가을이 그렇게 훅 가버렸습니다.

바람이 흐느껴 웁니다. 컴컴한 거리를 더듬듯 걸어갑니다. 어쩌면 이제 새로움에 대한 설렘은 거두어야 할 듯싶습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의 끈을 잡고 오늘을 위안합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매번 식어버려 우리를 주저하게 합니다. 독한 슬픔 되어 머리를 내리칩니다. 아프고 아린 마음을 달래줄 따뜻한 손길이 한없이 기다려집니다. 우리가 늘 그랬듯 곁을 내어주는 마음이 필요할 듯합니다. 서로 조용히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까지 살아있음을 느껴봅니다.

살며 누구나 상처를 받고 삽니다. 시간이 스며드는 계절이 되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뭇잎은 떨어집니다. 소중히 피웠던 꽃들마저 무겁게 툭 떨어집니다. 가을을 떠나보내는 비가 힘없이 내립니다. 이런 날이면 사람이 시리도록 그립습니다. 촛불 꺼진 자리에 흘러내린 눈물이 텅 빈 거리에 흐릅니다. 맑은 영혼을 가진 그가 세상의 바람 앞에 버티며 서 있다가 제 무게에 못 이겨 무너졌습니다. 별반 큰 호감은 없었지만, 사람의 온기 떠난 빈자리가 이토록 쓸쓸한 줄은 몰랐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에는 어느 날 도로시와 강아지 토토가 회오리바람에 휩싸여 신비한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는 마을로 돌아가는 도움을 받기 위해 마법사 오즈가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이 길에서 두뇌가 없는 허수아비와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갖은 고초를 당하지만 결국 오즈를 만나게 됩니다. 아뿔싸 그렇게 찾은 마법사 오즈는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법사 오즈는 그만의 방법으로 각각의 소원인 두뇌와 심장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도로시와 그 친구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마법사 오즈는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마법사 오즈는 도로시이고 허수아비이고 사자이고 양철 나무꾼인 우리 자신입니다. 생각이 없고 정열도 없으며 용기가 없는 각각의 약점을 스스로가 극복해 내야 하는 지금 처한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 봅니다. 그리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거짓말쟁이 마법사가 그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소원을 들어주리라 작은 희망을 품어봅니다. 그것이 차가운 희망일지라도 그가 해냈듯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요.

가을이라는 계절은 한없이 사람을 움츠러들게 합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약점은 다 있습니다. 그 안에서 찧고 까부는 게 우리입니다. 누구나 흔들리고 누구나 용기 없고 누구나 모자란다고 생각하지요. 다만 우리는 그것을 애써 숨기려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가야 할 길이 있다면 눈 딱 감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자신에게 가만 귀 기울여 보면 뜨거운 피 솟구치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우리에게는 희망의 여정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가을이 깊습니다. 바람도 시립니다. 매년 이맘때만 되면 수없이 뒤돌아봅니다. 가야 할 길 보다는 돌아볼 세월이 너무 많음을 압니다. 그러나 아직 뒤돌아 좌절하기보단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의 삶이 소중합니다. 가끔은 깊은 산속에 사는 짐승의 울음을 울 때입니다. 가을은 그래서 차가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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