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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문화예술팀장

며칠 전 속초를 비롯한 강원 동해안에 큰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국가적 재난 수준으로 번져간 이번 산불의 기세는 차마 손을 쓰기조차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초속 20미터가 넘는 바람과 메마른 산천에 화마는 사정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방관들은 목숨을 불구덩이에 맡긴 채 손이 부르트도록 산불과 싸웠습니다. 걷잡을 수 없게 타오르는 산불을 향해 달려가던 119대열이 전국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국가적 재난에 우왕좌왕하던 지난 세월의 무능을 겪고 난 다음에 벌어진 대처이기에 더욱 가슴 뿌듯한 장관이었습니다. 잘 훈련된 소방대원들 덕에 산불의 크기에 비해 인명피해가 최소한으로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모든 재난이 그렇듯이 이번 산불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재난이 닥쳤을 때 회피하거나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복구와 생명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산불엔 전국 각지에서 소방차 872대, 소방관 3251명이 집결했습니다. 더불어 군 헬기 23대를 비롯해 110여대의 헬기도 동원됐습니다. 우리나라 화재역사상 가장 많은 소방차가 출동하며 재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기울였습니다. 사흘 만에 걷잡을 수 없던 대형 산불을 잡은 것은 세월호 이후 위기 안전관리 대응에 만전을 기한 국가의 노력과 소방관들의 공이 컸습니다.

5년 전 이맘때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세월호가 침몰되고 있었습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고로 온 나라가 초상집이 되었습니다. 차마 눈뜨고 바라볼 수 없는 광경이 순식간에 벌어졌고 이 땅의 어린 학생들이 차가운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만있으라는 선내방송을 듣고 그 지시에 따라 몸을 낮추며 기울어가는 배안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자기 몸 하나 건지려 허겁지겁 세월호를 떠났습니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학생들에게 밖으로 뛰쳐나가 구조선을 타라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자식들은 바다에 잠겼습니다. 그해 봄 우리는 대한민국이 침몰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날 이후 다섯 번째 봄이 또 왔습니다. 아직 우리의 삶과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은 어디서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세월호의 외침은 우리의 재난에 대처하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변하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숯덩이 가슴을 보지 않은 채 국민을 볼모로 지금 당장 달려가야 할 재난현장에 가지 못하도록 발목 잡는 모습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국가적 재난사태를 조롱하며 자기 당략을 앞세워 국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모습도 있습니다. 진정 재난은 재해나 국가적 위기에서도 오지만 더 큰 재난은 재난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이기적이고 집단적인 사고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으로 한심합니다.

대한민국이 침몰되어 다시 인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수백의 어린 학생들을 수장시키며 다시는 이런 재난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것은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진 명령이고 최후의 경고입니다. 이 경고를 무시한다면 스스로를 죽이고 대한민국을 또 한 번 죽이는 행위입니다. 국가적 재난 앞에 국민의 도리를 겸허히 준비하는 것, 그것이 국가의 책무이고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누가 그날의 기억을 잊겠습니까. 세월호의 비극을 가슴 먹먹히 안타까워하던 국민들은 그날의 기억을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당당히 맞서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꽃이 진 후에야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새가 웁니다. 다시 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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