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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눈이 부시다. 잠시 시내를 벗어나 바라보면 온 세상이 불탄다. 지난 여름 힘들었던 만큼 나뭇잎들이 순식간 타오른다. 눈부신 날이다. 고단한 어깨를 내려놓고 낙엽이 바람에 실려 날아간다. 짧은 시간 지내다 가는 이파리들이 흩어진다. 불꽃이 타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저리도 바닥에 뒹군다. 가을은 짧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슬픈 계절이다. 그 길에 내가 서 있다.

 우리에게 행복은 세속적인 성취 정도로 정해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사람들의 욕망이나 세상의 인정에 따라 정해질 수도 없는 것이다. 인생은 봄날처럼 왔다 가버리는 덧없는 것이다. 돌아볼 수 없는 시간만큼이나 순간 흩어지는 바람이다. 그 길에서 서성이며 내가 있다. 내 안에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을 손에 가득 들어 하늘 향해 흩뿌려 본다. 눈부시다. 지금이 최고의 날이다.

 얼마 전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를 참 감명 깊게 봤다. 구한말 자신의 부모가 양반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심장에 담고 미군군함에 올라 탄 한 소년이 자신을 버린 조선에 미군장교인 유진초이로 돌아온다. 또한 고씨 가문의 애기씨인 고애신은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어 독립운동의 한 복판에 선다. 그리고 이 둘은 애틋하지만 결연한 사랑을 한다. 둘의 사랑은 잎 진 뒤 꽃이 피는, 그래서 서로 사무친다는 상사화 같은 사랑을 한다. 뜨거운 여름날, 나는 어쩌면 그 드라마를 기다리는 재미로 견뎌냈는지도 모른다.

 내년이면 3·1운동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된다. 지금 나라에서 '미스터 션샤인' 후손들을 찾는다고 한다. 씁쓸하다. 아마도 수천수만의 사람들은 그저 개똥이, 돌쇠, 언년이로 죽었을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왜 낫을 들고 총을 들었을까. 어쩌면 그들이 지키려 싸운 것은 조선이 아니라 내형제, 우리 모두의 삶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인가. 그들과 함께 걸은 걸음이 이 나라의 역사가 돼있건만 아직 우리는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지는 않는가. 그들이 독립유공자가 되려고 그리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를 지키고 우리의 숨결을 지키려고 한 것뿐인데 100년이 지난 지금 무슨 성화인지 모르겠다.

 나라를 지킨 의병들의 주검 위에 비치는 저 눈부신 햇살로 우리의 지금이 있지 않는가. 그래도 싸워 지켜온 이 나라가 아닌가. 역사는 그렇게 기록된 것일 뿐이다. 옳고 그름이 혼란스럽지만 지금도 여전히 지키며 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사람들 아닌가. 그렇게 피 흘리며 스러져간 민초들의 모습들 속에서 저 광장 한복판 촛불을 들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내가 너무 나간 것일까. 이게 어찌 만든 나란데 아직도 이렇게 국민들이 더 아파해야 하는가 말이다. 그 이름 모를 꽃잎이 선연히 속살에 파고든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고통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줄은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는 과거가 없는 지금이 없고 지금이 없는 미래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민초들의 역사는 한 번도 피비린내 나지 않은 때가 없었다. 친일과 독재의 후손들이 그대로 떵떵거리며 살고 청산해야 할 것들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는 이 땅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할 것인가. 천민과 양반, 갑과 을의 신분제가 반복되고 가진 자들은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자신들의 세계를 지속적으로 지켜내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역사의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여전히 암울할 뿐이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애신은 말한다.

 "눈부신 날이었다. 우리 모두는 물결이었고 모두가 뜨겁게 피고 졌다. 그리고 또 다시 타 오르려 한다. 동지들이 남긴 불씨로…"

 눈부시다. 션샤인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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