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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택

충북도교육문화원 문화기획과장

'언제 밥 한 번 먹자.'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과 나누는 대화 중 빠지지 않는 대화의 한가지다. 거리에 서서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며 서로 살아가는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내 헤어져야 할 때가 되면 꼭 하는 말 '언제 밥 한 번 먹자.'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흔하게 하는 말일게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말을 꼭 지키고자 하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또한 상대가 이 말을 꼭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별로 없는 듯 하다. 그저 지나가는 상투적인 말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빈 약속들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죽을 때까지 평생 사랑할게.' '언제 같이 여행 가자.'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게'처럼 지키지 못할 약속의 말들이 참 많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런 말을 듣는 순간만큼은 설렘과 기쁨, 감동을 주지 않았을까? 아주 잠시라도 말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때때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흔한 약속을 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오늘을 사는 건 아닌가 싶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배웠고, 삶을 살면서 한 번 한 약속은 꼭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왔다.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반드시 10분 먼저 약속 장소에 나가서 기다리는 것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주어준 책무다. 새 학년이 시작하는 3월 첫 날은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꼭 대중목욕탕에 가서 몸을 깨끗하게 했다. 아이들과 만나서는 차별하지 않고 편애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약속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들과 20평 남짓 교실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얼마나 약속을 잘 지켰을까? 1년을 갈무리하는 때가 되면 늘 하던 성찰이었다. 분명 차별하거나 편애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건만 학년말에 돌아보면 어떤 아이에게는 기쁨과 행복으로, 또 어떤 아이에게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슬픔과 고통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과 한 약속이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 애를 썼건만 나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느낀 건 아마도 아이들과의 약속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음을 아이들의 표정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던 까닭이리라.

해마다 소복하게 눈 내린 이른 새벽 아무도 밟지 않은 넓은 운동장에 나가 운동장 저 쪽 끝 느티나무를 목표로 앞만 보고 걷는다. 목표 지점인 느티나무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며 내가 걸어 온 발자국을 확인한다. 분명 똑바로 걸어왔는데, 발자국이 춤을 추었다. 뱀처럼 꼬불꼬불한 발자국은 나의 삶의 여정을 닮았다. 아이들에게도 나처럼 눈 내린 날 아침 조용히 나와 운동장을 걸어보라 주문한다. 늘 바른 가치관으로 올곧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마음먹은 만큼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는 자신과의 약속이며 세상을 향한 약속이다. 아울러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을 하기로 한 약속이거나 하면 안되는 일을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말없이 지키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과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약속을 지킨다는 건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것이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의미다. 약속이라는 것이 항상 잘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지키기에 버겁고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살아가는 순간순간 타인과의 약속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삶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한 해를 갈무리하는 시점에 서서 지나온 나의 삶을 톺아보며 다시 새롭게 달려갈 길에 대해 스스로 약속의 조각들을 모아본다.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약속을 지킴으로써 더 단단해질 나를 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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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