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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쑥부쟁이꽃, 뚱딴지꽃, 오이풀꽃, 들국화꽃, 다섯 살배기 외손녀가 유치원에서 가을에 피는 꽃을 배웠다며 꽃 이름을 하나씩 불러본다. 아이가 부르는 꽃 이름에서 무르익은 가을 풍경이 눈에 아른거린다. 쑥부쟁이? 뚱딴지? 이름이 새롭고 재밌는지 "할미! 이 가을꽃 알아요?"라고 물었다. 글쎄! 뚱딴지 꽃이 뭘까?하고 검색을 해보니 내가 알고 있는 돼지감자 꽃의 또 다른 이름이며 뚱딴지는 돼지의 사투리였다. 가을 둔덕에 샛노랗게 피어 눈길을 끄는 이 꽃은 언뜻 보기에는 작은 해바라기꽃 같고 삼잎 겹 국화인 키다리 꽃과 유사하게 보인다. 소박하고 어여쁜 노랑이 꽃 이름이 뚱딴지라니…. 미덕이라는 꽃말에 호감이 더하다. 마을 어귀 빈터에 무리 지어 피어나는 돼지감자꽃을 볼 때면 뚱딴지·같은 어감에 마냥 행복한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손주들에게 가을꽃을 보여주려고 들녘으로 나섰다. 황금 물결 사이로 길섶에 마른 풀꽃 향기가 가슴으로 스며든다. 아이들 손을 잡고 코스모스가 살랑대는 가을 길을 걷자니 저만치 논둑 끝자락에 노랗게 핀 뚱딴지 꽃이 눈에 들어왔다. 외손녀에게 꽃 이름을 가르쳐주려니 나에게 처음으로 돼지감자꽃 이름을 가르쳐주던 남편과 애틋했던 추억이 멀어져 간다.

캐나다에 사는 작은딸이 아들을 출산하고 첫돌이 되자 한국에 들어왔다. 외국에 살면 영어는 저절로 배우게 될 터이니 모국어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보면 교민 2세들이 모국어를 몰라 부모와 자식 간에 소통이 원만하지 못하다며 외손자를 위해 대여섯 살까지 한국에서 살겠다고 한다. 영어를 몰라 돈을 들여가며 이국 말을 배우는데 유년기를 고국에 살며 우리말을 가르치겠다는 딸과 사위의 결심이 놀라웠다. 모든 언어에 모국어가 기초라는 딸의 신념에 평소 잊고 있던 우리 말과 글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외손자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한국의 말과 글을 바탕삼아 국제적 인재로 키우겠다는 딸의 노력이 가상하기만 하다. 우리 말과 글 사이에 동사 형용사 의성어 의태어 등은 영어로 대변할 수 없는 고유언어이며 문자라고 한다. 그러므로 외국에서 살아갈 2세에게 모국어는 필수라는 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곤 어려서부터 고급 언어?를 써야 아이가 커서 작문도 잘하고 훌륭한 문장가가 된다며 어머니도 손주들에게 예쁘고 고운 말씨를 써 달라고 당부를 한다.

나는 표준말을 골라 쓴다면서도 어쩌다 고향 사람을 만나면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사투리는 '산과 들과 강이 키운 말의 표정이며 눈짓이고 고갯짓'이라고 하지 않던가, 충청도가 고향인 나는 그려유, 좋아유 라는 느릿한 우리네 사투리가 편하고 좋다. 아닌 건 아녀…. 모음과 어미를 길게 빼는 이 순박한 언어를 남들은 촌스럽다 하지만, 몸에 밴 나의 사투리는 고향의 구수한 몸짓이며 눈짓이다. 소통에 난감한 상황이 올 때 촌스럽다고 하나 '요'자 보다 '유'자가 훨씬 효과적임을 여러 번 터득한 바 있다.

간간이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벼 이삭들이 서걱거리며 흔들린다. 이맘때 새떼를 쫓느라 둑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들판에 대고 "엄마! 나 왔어유, 모두 잘 있어유" 아마도 가난하고 무지했던 백성들이 어깨너머로 익힌 한글을 어설프게 발음한 것이 지방의 방언이 되고 사투리가 된 건 아닐까? "고상 혀, 그런 겨, 숭악 햐"어머니가 쓰시던 사투리로 말 잇기를 하자니 흙내처럼 순박하고 정겹다.

아이들과 가을 길을 부르며 들판을 거니는 사이 논 한 가운데 서 있는 허수아비를 보고는 반가움에 소리친다. "할미, 허수아비랑 뚱딴지 꽃이랑 친구인가 봐요, 다같이 들판을 지켜주네요" 한다. 둔덕에 피어난 노란 뚱딴지꽃이 동심에 화답하며 가을을 수놓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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