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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수술만은 면해보려고 동네 병원에 다니며 주사로 무릎관절을 다스렸다. 언제부턴가 주사의 효력도 미미해지고 오른쪽 무릎이 자꾸만 아프다고 투덜거린다. 밀려오는 통증을 호소해 보지만 연골이 닳아서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단다. 열심히 산 것뿐인데 황혼 녘에 수술이라니 만감이 교차했다. 입원과 재활까지의 시간이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바쁘게 사는 자식들에게 수술이야기를 꺼내기가 민망했다, 그래도 자식이 최고라 하지 않던가, 큰딸이 이미 엄마의 수술을 위해 한 학기 육아휴직원을 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앓는 병이 관절염이라고 한다. 내 나이 예순일곱, 지금껏 건강했는데 "왜 하필 내 인가"라고 푸념만 쌓인다.

수술 코디네이터의 설명대로 준비물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얼마나 아플까 또 얼마나 무서울까, 합방하는 환자들은 순할까" 쓸데없는 걱정이 걸음을 무겁게 했다. 병실에 짐을 푸니 수술을 하고 재활 중인 환우들이 환영해 주었다. 조금만 참으면 새날이 온다는 둥 퇴원하면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겠다는 둥 서로를 동정하고 가여워하는 동병상련 풍경이다.

수술실로 향하는데 참회의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집도의의 손길에 또한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었다. 난생처음 하는 수술에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마취의 위력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비몽 사몽 간에 수술이 끝났고 통증은 가혹했다. 외동딸이라는 이유로 어릴 적 부모님의 사랑은 늘 과했다. 어떤 응석에도 내 편이 되어 주시던 부모님 덕에 참을성이 없고 인내심도 부족한 편이다. 아프다고 울어봐야 그 시절 같이 역성들어줄 사람도 없는데 자꾸만 눈물이 난다. 하루쯤 지나자 무릎을 130도까지 꺾으라 한다. 머리로는 해내겠다는 결심이 서는데 도무지 고통의 연속이다. 의지도 약하여 인내하지 못하고 3주 내내 100도에서 머물고 말았다. 젊은 물리 치료사들은 나를 엄살쟁이라고 불렀다. 참을성도 없고 끈기도 없는 내가 한심스럽기만 했다.

창문 너머로 초록빛 여름 향기가 물씬 풍긴다. 어수선하던 병원에서 집에 오니 오롯하고 좋다. 엄마의 유약함을 지켜보던 딸이 이번에는 성공해야 한다며

도수치료를 신청하고 다시 재활을 꿈꾸게 했다. 각고 끝에 130 각도가 나왔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꺾기를 해내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다음단계는 지팡이를 짚고 걷는 연습이다. 추레한 내 모습을 누가 보면 어쩌나 하면서도 삐뚤빼뚤 한 걸음씩 고요한 산책로를 걸어본다. 집과 병원을 오가며 단조롭던 일상에 초록의 숲에서 폐부 깊숙이 심호흡을 해본다.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다.

측백나무 길을 지나 연못가 보리수나무 아래 노란 나무 의자에 앉았다. 바람이 한바탕 나를 휘감고 간다. 어디서 날라 왔는지 방아깨비 한 마리가 풀 섶으로 지나간다. 나뭇가지로 방아깨비를 건드렸더니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덤볐다. 가는 길을 가로막고. 한참 동안 훼방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러다 그를 놓아주자 날개를 펼치고 어디론가 날아간다. 비록 연약한 곤충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방아깨비의 신념이 핑계만 대던 내 모습을 부끄럽게 했다.

꾀가 날 때마다 방아깨비를 그려본다. 어느 날 내 아픔에 찾아든 방아깨비는 나를 행복으로 초대한 은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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