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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끝자락에 구세군의 자선 남비와 사랑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어느새 연말이라니,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자신을 비춰본다는 시인처럼 걷던 걸음을 멈추고 지나간 삶의 궤적들을 들여다본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회한과 슬픔, 그리고 잔잔한 기쁨의 순간들도 지나고 나면 은혜와 선물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사랑의 빚을진 이들을 헤아리며 고맙다는 인사를 올린다

예년 같으면 성탄 및 연말 행사로 붐볐을 거리가 차분하니 한산하다. 창궐한 코로나 여파인지 12월의 거리에 캐롤 소리도 들리지 않고 화려하던 트리 장식마저 자취를 감춘 삭막한 분위기다. 크리스마스는 교회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누구에게나 설레는 날이 아니던가, 쓸쓸한 거리에서 어릴 적 크리스마스를 회상하며 그리움의 나래를 편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고향에는 언덕 위에 작은 예배당이 있었다. 양철 지붕 위에 조그만 나무 십자가와 시골교회의 눈 덮인 겨울 풍경은, 한 장의 성탄 카드처럼 우리네 마음을 밝혔다. 낡은 종탑과 뉘엿뉘엿 들리던 풍금 소리가 초로의 길에 향수를 달래며 이따금 추억을 부른다. 산골 마을에 짧은 겨울 해가 어둠을 내리면 동네 아이들은 성탄 준비를 하느라 교회로 모였다. 도란도란 난롯가에 앉아 색종이를 오려서 별을 짓고 오색 줄을 엮어 트리를 만들던 고향의 겨울밤이 그립기만 하다. 구호품으로 건너왔다는 친구 아버지의 허름한 양복과 모자, 보자기 돋보기 지팡이 같은 소품들은 60년대를 대변하는 우리의 비루한 실상이었다. 교회 언니 오빠들이 펼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성극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감동의 줄거리였다. 내 동무들은 무용과 합창을 하고 나는 유일하게 독창을 했다. 책임감과 자존감에 충만하여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정작 당일에는 목이 쉬어 꺼억 꺽 거리던 그날의 웃지 못할 일화는 지금도 나를 겸손?으로 초대한다. 학예회를 하듯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성탄 전야를 함께했던 고향의 옛동무들이 보고 싶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온갖 상념들이 고향의 언덕에 아스라이 피어난다.

논밭에 눈이 하얗게 내리면 달빛에 비친 들판은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빤짝거렸다.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을 따먹으며 눈썰매를 즐기던 아득한 날의 기억들... 산타가 가져다줄 선물을 고대하며 하늘거리는 호롱불을 들고 새벽 송을 돌던 추억이, 보일 듯이 보일 듯이 아른거린다. 자루를 메고 웅성웅성 마을의 새벽길을 가던 내 십 대의 크리스마스, 싸리문 앞에서 마음을 모두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며 축복을 기원하던 빛바랜 기억들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노랫소리가 그치면 삶은 계란과 고구마를 담아주시던 우리네 어머니의 순박한 기도가 오늘의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낸 것 아닐까,

산타가 보내준 크리스마스 선물은 사과 한 개, 연필 한 자루, 박하사탕 두 개가 전부였다. 가난했지만 가난이 뭔지 모르고 작은 것으로도 풍성히 마음을 채울 수 있던 소중한 추억은 세월의 뒤안길에 쓸쓸히 흘러간다. 즐거웠던 성탄 맞이 이브 행사와 성탄절 칸타타 그리고 새벽 송과 캐롤은 추억 속의 향기로 남는 걸까, 언제부턴가 캐롤이 편향된 종교 행위라며 방송에서 금지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안타까웠다. 때로 노래 한마디와 선율 하나가 삶에 지친 이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기도 하는데 너무 각박해가는 인심이 연말을 더 슬프게 한다.

지난주 교회에서는 대림절 셋째 주일을 맞아 분홍색 초에 불을 밝혔다. 대림절은 크리스마스 전 4주간 동안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재림을 기다린다는 교회력의 절기이다. 진보라 보라 분홍 흰색 네 가지의 초에 한 주간씩 소망 평화 기쁨 사랑의 의미를 담아 촛불을 켠다. 첫 주에는 기다림과 소망을, 둘째 주는 회개와 빛을 셋째 주에는 화해와 기쁨 그리고 네 번째

주는 사랑과 나눔을 상징하는 평화의 빛을 의미한다.

나도 마음에 촛불 하나 밝히며 성탄의 의미를 묵상해본다. 이웃과 더불어 사랑과 화해와 나눔과 기쁨의 크리스마스를 기도하며 비방과 비난을 멈추고 화해와 평화를 실현하는 성탄이 되길 소망해 본다.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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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