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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여름내 수북하게 자란 정원의 잡풀들을 베느라 제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소음이 그치고 나니 풀 냄새가 향긋하게 천천히 스민다. 마치 풀을 베고 난 논두렁을 지날 때 풍기던 향기가 떠오른다. 풀과 함께 농촌에서 자란 어린 시절, 아이들도 흔한 풀처럼 귀함을 받지는 못했다. 다만 뽑아도 뽑아도 또다시 자라나서 길을 덮는 강인한 근성을 조금이라도 닮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

가끔은 촌사람인 내가 좋다.

지난봄 친척 결혼식이 있어 대전에 갔다. 예식을 마치고 집으로 오려니 만개한 봄꽃 행렬에, 어디라도 가서 열린 봄을 만끽하고 싶었다. 마침 같이 간 딸과 사위가 백화점을 가자고 제안한다. 사소한 것까지 보살펴주는 인정 많은 사위인데 "장모님한테 가방을 사주고 싶다" 한다. 지금껏 내 손으로 명품 가방을 구매한 적이 없고, 오래전 딸에게 일명 똥 가방이라 하는 명품을 선물 받은 게 전부인데 마음이 설레었다. 우리는 'ㄹ' 명품관으로 향했다. 향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번호표를 주며 전화로 연락이 가면 그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 시간 넘도록 다른 상점들을 배회하고 나서야 들어오라는 문자가 왔다. 매장에는 서너 명만이 물건을 고르는 터라 차분한 분위기다. 도난 방지를 위함이거나 고객의 편의를 위한 배려로 소수 입장을 고려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맞이한 여직원이 하얀 장갑을 낀 채 흰 강보에 싸인 가방을 꺼내 온다. 조심스레 천을 벗기자 가방이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인다. 그녀는 몇 안 되는 상품에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며 그 제품만을 권했다. 값은 얼마인지 물어볼 겨를도 없이 가방을 들고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본다. 안목 높은 사위는 잘 어울리고 멋스럽다며 흔쾌히 결제했다. 물건을 포장하는 사이 넌지시 가격을 훔쳐보았다. 아뿔싸, 1자 뒤에 숫자가 일곱 개가 더 붙어있다. 불현듯 보통(?)사람으로 사는 내가 천만 원대 가방을 든다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다. 내 분수에 맞지 않는다며 사양하련다고 반품을 요구하자, 보상받을 이유가 충분하다며 "괘념치 말라"고 나를 달랬다. 힘겨운 세대를 사셨기에, 늘 분수에 맞게 살라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건만 선물을 받기로 했다. 값비싼 명품을 소유한 뿌듯함에 가슴이 뛴다. 늦은 밤 가방을 꺼내놓고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며 몇 번이고 들어보았다.

마침 이튿날이 주일이라 당장 명품 가방을 들고 교회에 갔다. 애써 과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선물한 이에 대한 예의라고 혼잣말을 한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짓궂은 날씨는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나도 모르는 사이 비에 젖을세라 겉옷을 끌어당겨 가방을 감쌌다. 교회 마당 끝에서 딸 내외가 나를 보고 눈을 질끈 거리며 웃는다. 오늘따라 시류에 편승한 내 모습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낯설어 보인다. 어쩌면 나에게 어울리는 가방은 조금 촌스럽대도 소박한 것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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