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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초록 물감을 풀어놓은 듯 산야가 온통 푸른빛이다. 초록이 잠시 쉬어가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수필을 쓰려는데 글머리가 풀리지 않아 차를 몰고 들녘으로 나갔다. 차창으로 고향의 향기처럼 풀 내음이 진하게 밀려온다. 산뜻하고 상큼하다. 차를 세우고 달그락거리던 내 삶의 모서리에 가만히 들풀의 숨소리를 들어본다.

호숫가에는 푸르른 산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둑을 따라 끝없이 이어가는 하얀 꽃 물결이 청초하다. 바람이 스치고 간 자리마다 발자국처럼 피어난 망초 꽃이 희다 못해 눈이 부시다. 가히 우아하다. 사물의 깊이를 모르고 볼품없는 꽃이라 지나쳐 버리던 망초꽃이 나에게 살갑게 웃는다. 소금을 뿌려놓은 듯 피어있는 하얀 꽃밭에 몸을 낮추고 숨었다. 꽃과 숨바꼭질을 하는 사이 꽃 속에, 언뜻 어머니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밭둑에, 논 가에 주인 떠난 어느 허름한 초가집 뒤 안에, 해마다 소리 없이 피어나는 하얀 망초 꽃을 보면 봄날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몸에서 흙내가 나던 어머니는 봄이 되면 들판을 서성이셨다. 봄바람 사이로 호미를 들고 나물을 캐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파종한 씨앗들이 새순을 틔우고 종달새 소리높여 지저귀면 밭에는 잡초들이 앞서 자랐다. 거친 밭이랑에 여기저기 흔하게 난 망초는 유독 어머니 심기를 성가시게 했다. 고단한 삶에 망초 대를 뽑으며 "이놈의 망할 풀" 하고 밭둑에 던져버리던 엄니 모습에 쓴웃음을 짓던 생각이 난다. 풀은 이내 시들하다가도 밤이슬 하나로 되살아나서 더 많은 풀섶을 이룬다. 망초의 근성이 얼마나 질기던지 온실에서 자란 화초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풀과 엄마와의 애증도 잠깐, 망할 놈의 풀은 어엿한 나물이 된다. 너른 치마 자루에 여린 망초 순을 꺾어 마루 끝에 펼쳐 놓으시던 풍경이 아련하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상흔 위에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어머니의 삶은 한 떨기 망초였다. 땀과 눈물을 거름 삼고 척박한 땅을 일구며 청초하게 피어난 풀꽃 같은 어머니, 바람과 천둥과 번개를 이기느라 가녀린 몸짓으로 피어나는 걸까, 가느다란 꽃의 허리는 세상의 모든 고뇌와 풍파를 삭여야 했던 어머니의 허리처럼 애처롭다. 앙증맞게 피어있는 망초꽃은 여느 꽃보다 키가 커서 모두를 살필 줄 아는 너그러움이다. 그러니 손톱만 한 꽃송이에 고매한 우주가 담겨있다. 파란 하늘을 수반 삼아 살랑대는 꽃 물결에 내 마음도 덩달아 살랑거린다.

진한 향기도 없이 후미진 곳에 오롯이 피어난 망초꽃이 삶의 혜안을 가르쳐 준다. 주목받으려 하지 않고, 샘 부리지 않고 중심이 아닌 변두리 길 따라 무던히 피어나는 순수함이 나는 좋다. 나도 망초꽃의 낮은 마음을 닮아가고 싶다.

꽃들이 필 때면 해산의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참았을 꽃의 아픔을 생각하면 들꽃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가만히 꽃을 만져본다, 풀냄새가 그윽하다. 계란 꽃이다. 나는 꽃과 하나인 듯 "나도 너처럼 누군가의 삶 언저리에 피는 풀꽃이 되고 싶구나" 속삭여 보았다. 꽃은 내 귓속말이 간지럽다고 흐드러지게 웃는다. 다시 꽃 속에 몸을 파묻혀 본다.

조금씩 철이 드는 걸까, 나이를 먹고 보니 잘 가꾼 화분의 꽃보다 망초꽃 한 떨기가 아름답게 다가온다. 태고에 고향에서 같이 자란 친근함도 있지만 낮은 자리로 피어나는 꽃이기에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어 좋다. 아니 나의 모든 허물까지도 감싸 줄 것만 같은 넉넉함이다. 보드라운 꽃 섶에 앉아 이기적이고 내가 우선 되어야 하는 부질없는 욕망을 하나둘 내려놓는다.

인간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던가, 한때는 망할 놈의 풀이라고 천대받더니 어느새 무언의 스승이 되어 오롯이 피어난다. 하얀 망초꽃, 순수함이 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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