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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이른 새벽 앞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에 잠이 깼다. 해마다 이맘때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는 무논에 써레질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 하고, 다 여문 마늘 밭에서 쫑다리를 꺾으시던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뻐꾹뻐꾹" 어머니의 기도처럼 애달프게 들려오는 새소리에 마음은 숲의 능선을 넘어 고향으로 달려간다. 멀리 들리는 산새소리에 엉겅퀴가 피어있는 밭둑에 앉아 한줌 꽃을 꺾으며 마늘 캐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유년의 밭은 어느 덧 그리운 풍경으로 눈에 아른거린다. 문득 어머니 몸에서 나던 마늘 순 냄새가 코 밑으로 스치고 가는 듯하다.

발신자가 적혀있지 않은 택배가 도착했다. 내용물이 마늘인 것으로 보아 작년에 농촌으로 이사 간 화순 씨가 보낸 선물이었다. 남편과 일찍 사별을 하고 딸네 집에 와서 손주 보는 일을 하던 그녀는 손주가 중학생이 되자 자신의 일이 끝난 것 같다며 앞날을 걱정하였다. 마침 좋은 사람을 소개받고 재가하더니 지난해 시골로 떠났다. 그녀의 새로운 출발을 축복해주며 밥 한 끼 먹은 게 고작인데 잊지 않고 수확한 농작물을 보내다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장아찌를 담그려고 햇마늘을 수북이 까놓고 나니 그녀의 하얀 얼굴도 떠오르고 윤기 흐르는 마늘쪽 사이로 철부지 시절 오래된 기억하나가 겸연쩍은 미소를 보인다.

근교에 있던 우리 집은 밭에 심은 채소가 자라기 무섭게 시내에 내다 팔았다. 닷 마지기 적은 논에 밭뙈기 두어 두덕으로 육남매를 가르치는 일은 부모님께 얼마나 힘겨운 삶이셨을까, 여름내 열무다발을 이고 장 고개를 넘던 어머니, 깨어진 비석들 사이로 질경이 꽃이 무성한 고갯길을 오가며 해거름까지 어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초상은 반백년이 지났건만 지워지지 않는 애잔한 추억이다.

어느 핸가 마늘 농사가 풍년이 되었다. 마침 마늘쫑을 팔고오신 어머니께서 저녁에 들으니 내일부터는 마늘 장사를 해 보겠다고 하신다. 농사 말고는 별다른 수입원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한편 솔깃했다. 게다가 한철 해보는 장사라는 말에 아버지도 허락을 하시고 어머니는 같은 마을에 사는 외숙모와 리어카로 마늘 행상을 시작하였다.

여중 2학년 봄, 중간고사기간이라 수업이 일찍 끝났다. 아이들은 밀물처럼 정문으로 빠져나오고 나는 몇몇 친구들과 무심천 둑을 걸어 고당다리근처에 이르렀다. 입구를 지나려는데 리어카에 가득 싸놓은 마늘이 보이고 그 곁에 마늘을 팔고 계신 어머니가 눈에 띈다. 새까맣게 그을린 어머니의 남루한 모습을 보고는 어머니의 고생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가 알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왜 하필 우리 학교 근처에서 장사를 하시는 걸까· 철부지의 가슴에 부아가 나며 어떻게 어머니를 피해야할지 난감해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쩌나하고 어머니에게서 시선을 멀리 하고 일부러 딴전을 피우며 리어카 옆을 피해갔다. 멀찍이 와서 뒤돌아 친구들 몰래 어머니를 바라보니 삶에 지친모습으로 마늘만 팔고 계신다.

미안한 마음으로 재빠르게 집에 돌아왔지만 뇌리 속엔 산더미처럼 보이던 어머니의 마늘과 리어카 옆에 초라한 잔영들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친구들 앞에서 떳떳하게 내 어머니라고 소개를 했어야 했나?하는 양심과 아니면 도망치듯 어머니를 피한 것이 나은 것 아닌가? 하는 두 마음이 어린 가슴을 난도질 하듯 했다.

그날따라 장사가 안 되더라 시며 어머니는 늦게 돌아 오셨다. 낮의 일로 괴리감에 빠진 나는 어머니 얼굴을 대하기가 민망하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일어서는데 "제 새끼는 뒤퉁수 만 봐도 다 아는 겨" 하신다. 미안한 마음에 시험공부를 핑계 삼아 책상 앞에 앉았다. 늦은 시간까지 공부에는 집중이 안 되고 어머니를 외면하고 지나친 것을 생각하니 나는 얼마나 철부지인가,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죄송하다는 말씀도 못하고 속으로만 뉘우치는데 슬그머니 내 방에 오셔서 말없이 어깨를 다독여 주셨다.

내 나이 어느 덧 예순다섯, "제 자식은 뒤퉁수만 봐도 다 아는 겨" 두 딸을 키우며 이 관용의 말을 얼마나 많이 되 내였던가, 때로 칭찬의 언어로 때로는 질책 말로 나를 보듬던 어머니의 외마디 사랑이 오늘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다섯 살 배기 외손자가 어눌한 말투로 제 자식은 뒤퉁수만 봐도 아는 겨? 한다.

뽀얀 마늘위로 어머니의 절절하던 사랑들이 살며시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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