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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점점 차가워지는 날씨에 어린 외손녀가 언제쯤 눈이 오느냐고 묻는다. 대입 예비고사 날 시험을 마치고 나오던 길에 살포시 내리던 첫눈과의 추억이 먼 기억 속으로 떠오른다. 아마도 수능 날 눈이 올 것 같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는 요 며칠 눈을 기다렸다. 하교 시간이 되어 외손녀와 손을 잡고 아파트 숲을 지나는데 마침 눈발이 흩날린다. 눈이 오기를 고대하던 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양손을 펼쳐 눈송이를 모으려 하건만 눈발은 가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저녁에 눈발이 제법 굵게 날리더니 아파트 단지를 금세 하얗게 물들였다. 외손주 셋이 "와, 눈사람" 하며 밖으로 나갔다. 맑은 동심은 저마다 조막만 한 눈사람을 만들어 접시에 올려놓고 행복한 첫눈 맞이를 한다. 아이들의 함박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는 듯하다.

늘 한가롭던 우리 집이 북적거린다. 갑자기 한 지붕 세 가족이 되었다. 큰딸은 고3 담임에 야간자율학습 감독이라며 퇴근 시간이 때로 밤중이다. 출근할 때 우리 집에 맡기는 초등학교 일 학년과 유치원생 손녀 둘은 전적으로 내 몫의 육아다. 등하교와 등 하원 그리고 다시 학원 보내기까지 나만의 시간은 사라져 버렸다. 마침내 숙식을 반복하더니 방학 때까지만 봐 달라며 슬그머니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주말이면 큰사위까지 덤으로 온다. 외면만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따금 부아가 치밀다가도 엄마라는 이름에 안쓰러워 묵묵히 감내하는 중이다.

며칠 전 작은사위가 2개월간 캐나다로 해외 출장을 떠났다. 작은딸도 외로워 당분간 우리와 같이 지내겠다고 한다. 딸은 예쁜 도둑이라지 않던가. 마음 약한 나는 두 딸과 손주들의 급거 입주를 받아들였다. 새벽부터 할미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아이들도 헤헤거리며 아침을 맞는다. 눈을 마주 보며 식탁을 나누는 일도 한 지붕 세 가족의 즐거움이다. 사촌지간인 손주들은 "우리는 삼 남매" 하며 서열을 정하고 아주 끈끈하다. 핏줄이 뭐라고 힘이 들어도 손주들에 대한 사랑은 극진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꿈꾸며, 할미의 경륜과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아이들에게 착하고 따스한 선물이 되길 소망한다.

어릴 적 겨울은 눈이 많이 유난히 추웠다. 부모님과 우리 육 남매 그리고 새언니와 조카 셋까지 열두 식구가 한집에 살던 시절, 저녁이면 아버지가 왕겨를 뿌리며 풍구 불에 쇠죽을 끓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가마솥 언저리에 촘촘히 양말을 말리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솥 가로 발꿈치를 기운 양말들이 서러운 눈물을 흘리듯 하얗게 서린 김이 서글퍼 보였다. 비록 가난하고 학식이 높지 않았으나 따스한 가족애에 결핍도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오빠들은 새 덫을 만들어 담장 이엉 위에 올려놓고 참새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새는 오지 않고 덫에 달아 놓은 벼 이삭만 바람에 꿈질거렸다. 온종일 오빠들을 따라다니며 참새 몰이를 하던 추억에 살며시 웃음이 난다.

먼 훗날 우리 손주들이 기억할 한 지붕 세 가족의 풍경은 어떤 그림일까. 토드락토드락 재잘거리던 아이들은 어느새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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