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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03.23 18:00:32
  • 최종수정2022.03.23 18:00:32

박영희

수필가

봄이 내게 오는가 했더니 연거푸 거울 앞에서 자기소개를 연습하는 아이의 눈빛이 먼저 왔다. 유치원 입학을 기다리며 이름 쓰기 숫자 읽기에 힘겨워하는 어린 외손녀의 학습을 보노라면 배움이라는 막연한 욕구가 만물이 약동하는 봄처럼 내 마음에도 꿈틀거린다.

독신자 아파트에 홀로 사시는 김 할머니는 아들의 가난이 못 배우고 무능한 부모 탓이라며 가끔 회한에 젖는다. 푸석한 머릿결과 거뭇한 검버섯에 깊은 주름살이 암담한 세대를 살아오신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 같다. 지병인 혈압과 당뇨 때문에 우리 약국을 왕래한지가 이 십 년이 넘었다. 강산이 두 번 변한 세월의 무게에 할머니의 경륜이야말로 인생의 고매한 스승이 되기도 한다.

팔순이 지난 노구를 건사하기도 힘들고 사는 게 귀찮다는 김 할머니가 아침 일찍 문 할머니 이 할머니와 셋이서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급하게 가신다. 주간 보호 센터에 가시는 길인가 아니면 약 장수를 구경 가는 걸까, 가방을 들고 가시는 모습이 범상치가 않다.

오후 네 시쯤, 처방전을 갖고 김 할머니가 약국에 왔다. 들고 다니시는 가방이 궁금하던 차에 곁눈질하여 들여다보니 웬 공책이 낯설게 보였다. 약 봉투를 가방에 담으려다 연필 한 자루가 데굴거리며 굴러떨어졌다. "다 들통이 나는구먼, 나 솔직히 내 이름도 제대로 못쓰던 무식한 노인네여"하시며 멋쩍게 웃으신다. 평생 까막눈으로 살다 가는 줄 알았는데 늙은이한테 글을 가르쳐 준대서 공부방에 다니신다고 하셨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여든이 넘어 고령에 한글을 배우신다니 할머니의 가슴에 맺힌 한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움의 때를 놓치고 무학에 문맹으로 살아오신 김 할머니는 까막눈으로 산 세월이 너무 억울하다며 눈물을 훔친다. 불운했던 세대의 할머니를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정말 잘하셨다고 응원을 보내자 모서리가 닳고 닳은 공책을 펼쳐 보였다. 뉘엿뉘엿 어설프게 적어보았다는 할머니의 일기장은 갈피마다 편편이 순수한 산문이며 맑은 영혼의 시구들이 심금을 울렸다. 할머니의 글과 글씨가 너울너울 행복한 춤을 추며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문학소녀를 꿈꾸며 기억의 서랍에 간직한 추억들을 산문집으로 엮어보고 싶은 마음에 늦깎이로 수필을 시작하였다. 잡힐듯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가득한 것 같으면서도 비어있는 나의 수필은 바람보다 끝없는 고뇌의 시간이기도 했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공연히 세월만 허비하는 것이 아닌지 초조하기도 했다. 어느 때에는 흐르는 물처럼 순조롭게 글이 완성되지만 때로 한계에 부딪혀 낙심하다가 노트북을 덮는 일이 다반사였다. 게다가 과장된 몸짓과 현란한 기교는 나의 문장들을 치기에 빠지게 하고 쓰다만 토막글들은 아직도 퇴고를 기다리고 있다. 글쓰기를 위한 나의 심상엔 언제나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가슴을 짓누르기도 한다. 때로 가슴속에 있는 시상과 내가 쓴 문장 사이에 감정과 생각이 왜 이렇게 어설플까 하는 괴리감을 느낄 때도 있다.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이며 인격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좋은 글이란 화려한 수사보다 가식 없는 진솔한 마음이 더 깊은 울림을 줄 텐데 언제쯤 감동을 줄 만한 따뜻한 글을 쓸 수 있을까

김 할머니의 때늦은 학구열은 나에게 또 하나의 꿈을 꾸게 하였다. 인경리 작은 도서관의 고전 읽기반에 등록했다. 책을 통해 내면에 교양을 쌓고, 어휘력을 키워 손주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고양 시키고픈 초로의 지적 허영일지도 모른다.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헬레네 헥토르 오디세우스 황금사과와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신들의 이름과 인명과 지명을 이해하느라 쇠퇴해가는 두뇌로 기억을 총동원하며 밤을 지새우는 중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로 나를 격려해가며 마음의 뜰에 만학의 풀씨 하나 싹을 틔운 약동하는 나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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