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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분갈이를 하고나니 집안으로 거름 냄새가 스며들었다. 유리병 안에 담긴 보랏빛 향초를 꺼내어 식탁위에 올려놓고 심지에 불을 붙이니 작은 불꽃사이로 연한 보라색이 매혹적이다. 불을 밝히며 은은히 온몸을 태우는 향초덕분에 거실은 금세 라벤다 꽃향기로 가득하다. 한갓 촛불이건만 뜨거움을 견디며 울먹이다 어느새 촛농이 눈물처럼 고인다.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하나의 촛불은 내 그리움을 어루만지며 하늘을 향해 몸부림치며 타오르고 있다.

삼십년이라는 긴 세월을 동생의 약국에서 함께 지나온 시간을 추억해보니 동생은 나에게 촛불이었으며 형제와 이웃들에게 작은 불꽃이었다. 세상에는 물보다 진한 부모자식간의 사랑도 있고 부부간, 형제간 남녀 간 혹은 사제 간 친구 간, 수많은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들이 있다. 급작스레 아우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나니 그렇게도 누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던 동생의 애잔한 마음들이 목이 멘다. 함께 나누던 유년기의 소소한 이야기, 막둥이였기에 늙으신 부모님께 못 다한 마음들을 늘 아쉬워하며 오누이의 정답던 사랑이 벌써 그리워진다.

약국은 동생의 천직이자 생계수단이었다. 약국을 통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고 상한 영혼들을 어루만져 주고 싶은 마음으로 열악해 뵈는 소형 아파트 단지 입구에 약국을 열었다. 나는 임상병리과 출신이라 출산하기 전까지의 짧은 병원경력이 전부였건만 활달한 누나 성격이 대인관계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권유로 약국은 수 십 년간 나의 직장이 되었던 셈이다. 동생의 온유한 성품처럼 약국을 찾는 이들은 삶에 지친 가난한 이들, 심신에 장애를 갖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어 자신의 몸조차 추스르기 어려운 노인 들이 우리의 이웃이 되었다. 우리가 다가가기도 전에 먼저 다가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응어리를 토해내기도 했고 노인어른들의 아픔과 소박한 소원을 들으며 함께 탄식하고 함께 울어주던 기나긴 시간들, 약을 팔기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황혼의 삶을 준비하고 더 깊은 사고와 배려의 마음을 배우게 해준 그들은 우리 약국을 사랑방약국이라 하였다. 한 자리에서 수 십 년의 세월을 보내다보니 손님이 아닌 형제와 부모사이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집안 형편까지도 가늠할 수 있는 이웃사촌 같은 관계였다. 독거노인 정 할머니, 황 할아버지 구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사골 국물을 사들고 찾아가 위로해 주던 일, 치매에 걸려 요양원으로 떠나는 김 할머니를 포옹하며 함께 울어주던 일, 어버이 날이면 부모님을 그리며 외로운 노인들에게 소찬을 준비해 드리던 일……. 아직도 마음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위로해 드릴일이 너무 많은데 그렇게 가버리다니, 동생은 어려운 이웃의 촛불이었고 나의 멘토였으며 내 삶의 소중한 스승이기도 하였다.

무명초처럼 살다간 자리에 아우의 갑작스런 부음소식을 들은 노인들의 애통함이 줄을 이었다. 이 황망함을 어찌 할꼬 하시며 털썩 주저앉아 눈물 짓는 허 할아버지는 내 아버지 같은 버팀목이셨다. 인정머리 없다는 각박한 세상에 동생과 내가 받은 사랑의 빚이 얼마나 큰가, 비상금을 털어 부의금을 놓고 가는 노인들 ,십 년 넘게 공짜 약을 먹었다며 약값이라고 던져놓고 가는 사람, 외상값이었다며 꼬깃한 지폐를 건네는 박 노인, 착한 사람은 일찍 데려간다는 사람, 이제 어디 가서 박 약사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냐는 사람들, 오늘도 동생의 선행이 눈에 아른 거린다며 울부짖는 수화기 너머 이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에 죽음의 세계는 처참하건만 사랑을 퍼 주던 아우의 선한 마음들은 꽃처럼 피어오른다.

"누나, 외양간에 소가 없고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어도 오늘 주시는 은혜로 만족하지요?" 스스로 맑은 가난을 택하며 부를 쌓기보다 가난한 이웃을 향해 이타적인 삶을 살다간 동생……. 고단한 삶을 사랑으로 살아내며 두 딸을 남겨두고 차마 눈을 감지 못했을 동생이건만 벚꽃이 무성하게 피어오르던 날, 촛불처럼 타오르던 동생의 육신은 꽃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꺼져갔다. 주인 잃은 약국을 홀로 정리하며 사랑방 약국이라던 오랜 이웃들의 가슴에 동생의 작은 사랑들이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며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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