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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집에 있을 때나 운전을 할 때 습관처럼 음악을 틀어 놓는다. 음악에 몰두하기보다 대게는 딴 일을 하면서 음악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편이다. 그러면 음악은 내 의식 속으로 들어왔다가 나갔다 하며 내 주변을 서성인다. 그러다 아는 멜로디가 나오면 덩달아 흥얼거려 본다. 오늘따라 세차게 울어대는 매미들의 함성에도 일정한 리듬이 있다. 그러니 자연과 더불어 사는 우리 주변엔 늘 음악이 있는 셈이다.

이른 아침부터 교향악단 2차 오디션을 준비하는 외손녀의 바이올린 소리가 맑고 고아하다. 연주곡은 비발디 바이올린협주곡 가단조 3악장이다. 곡의 선율을 내가 다 외울 정도로 따라 하는 걸 보면 아이는 1천 번은 족히 연주한 것 같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 외손녀에게 제 어미는 더 깊은 소리를 내라 조금 느리게 하라, 비브라토를 살려라, 거기서는 작고 길게 소리 내라는 둥 요구 사항이 많다. 수 없이 연습해야 하는 외손녀가 너무 안쓰럽다. "음악은 자기를 자랑하기보다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아이는 지금 행복할까. 엄마의 요구 사항이 잔소리처럼 들리는지 아이는 얼굴을 붉혔다 풀었다 한다. 그래도 별다른 불평 없이 끝까지 곡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집념에서 결코 자랑을 위함이 아닌 행복을 위한 음악이 되길 기대해 본다.

구슬리고 달래가며 아이를 회유하는 딸의 모습에서 지난날의 내 행동을 발견한다. 어린 시절 나는 음악을 좋아했다. 청음만으로도 풍금 건반을 알아맞추기도 했었다. 그러나 늙고 가난한 부모님께 피아노나 노래를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어, 나의 꿈은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아침 이슬처럼 사라져 가고 말았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보니 자녀를 통한 대리 만족이랄까, 내 열패감의 보상심리가 작동하며 음악에 대한 욕구가 솟구쳤다. 유아기부터 어린 두 딸에게 피아노와 성악 그리고 현악기를 가르쳤다. 음악학원 원장님은 재능있다며 전공할 것을 권유했고 두 딸은 꿈대로 음악대학에 들어갔다. 예술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더구나 연주자의 길을 가기에는 끝없는 뒷바라지가 필요했다. 녹록지 않던 살림에 결국 딸들을 설득하여 음악 교사의 길을 가게 한 것이 두고두고 미안하다.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산다. 또 살면서 악몽을 꿀 때가 있다. 큰딸이 암 선고를 받은 것은 벼락이 치고 폭우가 내리고 폭풍이 몰려온 순간이었다. 이 고난을 어떻게 이겨 낼 수 있단 말인가, 안달하다 집착하고 괴로워했다.

딸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오선지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고통의 순간을 희락으로 승화시킨 딸의 고백이 얼마나 고매한가, 은사님은 곡을 보시고 음반을 내자고 하셨다. 고난은 변장 된 축복이라 하지 않던가.

음악을 시키느라 힘들었던 순간들이 보상받는 기분이다. 성악을 전공한 작은딸과 가수 장**님이 영혼을 담아 부르게 되었다. 오늘 새벽 서울 스튜디오로 향하는 두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릴 적 경연대회에 나가던 일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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