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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죽순(竹荀)은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대나무의 땅속줄기 마디에서 돋아나는 새싹이다. 마디마디와 껍질 끝에도 생장점이 있어 자라나는 싹은 돋아나서 열흘(旬)이면, 대나무로 성장하기에 제때 캐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죽순은 음력 4월 말 맹종죽(죽순대)이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5월 말 분죽(솜대), 6월로 접어들며 왕죽(왕대)이 나온다. 죽순은 보름 간격으로 첫물ㆍ두 물ㆍ세 물 즉, 세 번에 걸쳐 올라오는데, 그 맛은 차이가 있다. 주희의《사자소학》에서 유래된 맹종죽은 4월 중순부터 나와 원뿔형으로 크게 자라는데, 육질이 두툼하고 먹을 것이 많고 모양도 예쁘지만 약간 질기다. 분죽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나오며 적갈색이다. 왕죽은 6월 중순부터 말까지 나온다. 분죽과 왕죽의 죽순은 맹종죽에 비해 가늘고 길쭉하지만, 식감이 부드럽고 아삭해 맛이 더 좋다. 죽순의 고장 담양에서는 분죽을 최고로, 미식가들은 첫물의 맹종죽을 진짜 죽순으로 맛이 가장 좋다고 여긴다.

초여름 비가 온 뒤, 대숲에 가면 죽순이 돋아나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다. 얼마만큼 잘 자라기에 우후죽순이라 했을까. 땅을 뚫고 나와 하루에 30cm씩 자라는 죽순 모양이 거침없다고 해서 파죽지세라는 말까지 생겼다. 마을 사람들은 땅속에서 뾰족한 창을 밖으로 내밀 듯이 돋아난다고 한다.

순·죽태·죽자·죽아·죽손·탁룡·용손·초황으로 부르는 죽순은 5세기 초, 진나라 장방현의《초국선현전》에 '맹종의 효'의 고사에서 순(笋)이라 처음 기록됐다. 진나라의 왕휘지는 죽순 없이는 밥을 먹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가 "어찌 하루라도 차군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대나무를 '자네(此君)'라 부르면서 별칭을 얻었다. 648년에 편찬된《진서》<맹종전>에는 '맹종동순', '맹종읍죽'이란 고사와 함께 기록됐다. 당나라 백거이는《양죽기》에서 "죽순을 먹으니 열흘이 넘도록 고기가 생각나지 않았다"라고 감미로운 별미로 적으면서 대나무를 군자에 비유했다. 송나라의 소옹은《황극경세서》에서 죽순(筍)으로 적고, 도교 사상가의 음식이라 불렀다.

죽순을 쪄서 말렸다가 요리한 것을 순포(筍脯)라 하는데, 명나라 때 이시진은《본초강목》에서 순(笋)으로 적었다. 이와 관련한 민속은 중국 북위의 가사협이 편찬한《제민요술》에는 음력 5월 13일은 대나무 심는 날로 죽취일(竹醉日) 또는 죽미일(竹迷日)이라 했고, 남송 때 임홍은《산가청사》에서 "8월 8일은 죽취일이라 일컫는데, 대를 심으면 쉽게 살기에 죽미일이다. 송나라 때의 범치명은《악양풍토기》에《제민요술》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다.

고려 때의 이규보는《동국이상국전집》에서 순(笋)과 죽순으로 처음 썼다. 이곡은《가정집》에서는 봄죽순(春筍), 죽순장아찌(鹽齏)와 푸른 옥 묶음 같다라고 '창옥속(蒼玉束)이라는 별명을 적었다. 이색은《목은시고》에서 진나라 왕휘지가 대나무의 별칭으로 쓴 '차군'을 다시 쓰고, 겨울 죽순이라 했다. 조선 전기의 서거정은《사가시집》에서 '탁룡손(籜龍孫)'으로, 1527년 최세진은《훈몽자회》에서 '듁슌'으로 표기했다. 허균은《한정록》에서 산에서 사는 사람의 반찬이다. 서유구는《임원경제지》에서 산중 최고의 음식으로 알려진 죽순은 산림 은둔의 호사 가운데 하나라고 했고, 추사 김정희는 갓 돋은 죽순을 '금맹(錦繃)'이라 했다.
 
절개의 음식으로 불리는 죽순에는 시아노겐이라는 독성이 있어 날것으로 바로 먹어서는 안 된다. 쌀뜨물로 삶으면 떫고 아린 맛이 없어지고, 맛이 좋아지면 부드러워진다. 냉동 죽순은 다시 데쳐야 실처럼 풀어져 버리는 걸 예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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