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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흔히 고추(苦椒)는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전래했다고 전한다. 그 당시에 전래한 고추와 우리나라 토종 고추와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2009년 2월 한국식품연구원의 연구팀은 "임진왜란 이전에 한국에는 고추가 있었다"라고 발표했다. 고추의 일본 유입설을 뒤집은 이 연구결과는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가져갔다는 '아히(aji)'라는 고추는 생물학적ㆍ농경사학적 그리고 식품발달사학적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고추가 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일본 유입설이 대세였던 이유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것은 한양대 이성우 교수가 1978년 발표한《고려 이전의 한국식생활사 연구》에서 "고추가 1592년에 일본에서 전래되었다"라고 주장한 때로부터 통설로 인정해온 것이다. 이 교수가 정한 1592년은 전쟁이 처음 발발한 시점으로 고추나 고추 씨앗을 가지고, 올 상황도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487년 간행된《구급간이방》에는 한자 초(椒)에 한글로 '고쵸'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1527년 최세진의《훈몽자회》에서도 고추가 매실, 산초(제피)와 함께 '고쵸 초(椒草)'라고 기록했으며, 통일신라 말기에 전래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추장에 대한 문헌으로는 9세기경 중국 당나라 때의《식의심감》과 1433년 편찬한《향약집성방》과 1460년 간행된《식료찬요》에 '고추장(椒醬)'이라 한 기록이 등장한다. 조선 초기부터 사용한 것은 홍귀달이 1504년 새해맞이 기원 시에 보면, "고추장으로 풍년을 기원하네"라는 내용이 그의《허백정문집》에 나온다.

이처럼 고추가 임진왜란 시기에 전래했다는 설과 달리 그 이전부터 우리 민족이 식용과 조리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1614년 이수광이 쓴《지봉유설》에 남쪽 오랑캐가 먹는 매운 채소라는 뜻으로 '남만초(南蠻椒)'라 적고, "독이 있으며, 왜국에서 건너온 것이라 왜개자(倭芥子)라고 한다"는 대목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는 기존의 재래고추와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 고추의 전래설과는 차이가 있다.

1709년 일본 본초학의 고전《대화본초》에는 "우리(왜)에게는 본디 고추가 없는데,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조선 원정 때 그 나라에서 종자를 가져왔기에 고려 호초(胡椒)라 한다"고 기록하고, 도사다후사가 1723년에 쓴《대주편년략》에서도 "고추는 임진왜란 때 왜병이 조선에서 가져 왔다"라고 하여 그 유래가 뒤바꿔 있다. 또 조선 말, 이재위가 지은《몽유》에서 "호초는 북호(北胡)에서 들어왔다"라고, 남왜(일본)에서가 아니라 북호의 전래설을 실었다.

1590년의《본초강목》에는 고추의 언급이 없으나, 1620년 명나라 황봉지의《당시화보》에는 남만 오랑캐로부터 전해진 것이라 '남번초' 혹은 번우(番禺, 중국 광동성의 속현) 지방에서 생산되었기에 이름 붙인 것이다. 청나라 때 조학민은《본초강목습유》에서 당나라를 의미하는 풀로 당초 또 신가(新茄, 새로운 가지)라 하여 고추를 가리키는 '고초'란 한자는 당나라 때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북한 평안도에서는 고추를 댕가지(唐茄)라고 부른다. 실학자 이익은《성호사설》에서 번초(番椒)라 기록하고, 중국 진나라가 원산지라고 했다. 그는 왜인들은 번초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왜초라 한다고 이름을 적어 놓았다.

토종채소의 고추란 이름은 쓴 풀의 고초라 부르면 사용된 낱말이다. 매운맛의 대명사 청양고추는 한 종묘회사가 1968년에 개발한 상표명이다. 영조 임금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고추장의 주원료인 고추는 캡사이신이라 성분이 있어 발효음식의 산패를 막고, 산패직전에 나오는 아미노산 맛을 유지하는 맛의 마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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