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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1.20 16:25:31
  • 최종수정2020.01.20 16:25:31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뽀빠이의 시금치가 잘못 알려진 데는, 1870년 독일의 과학자가 소수점 하나를 잘못 찍어 생겨난 웃음거리다. 실제 함량보다 10배나 부풀려진 것은 1930년대 다른 과학자에 의해 바로 잡혔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시금치=철분의 왕이란 등식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또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E.C 세가가 1929년에 만든 만화캐릭터 뽀빠이가 등장하면서 시금치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켰다.

1980년대 유명 만화영화였던 뽀빠이는 명대사와 함께 시금치를 섭취하고, 악당 블루토를 날려버리는 만화영화의 시금치 파위를 통해 잘 먹지 않는 어린이들에게 야채를 먹어야 한다는 교육적 의미까지 더해졌다. 또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거나 먹어봤을 뽀빠이 과자류가 출시됐고, 또 뽀빠이란 별명을 가진 방송 MC까지 등장했다.

녹색 채소가 귀한 겨울철의 채소인 시금치는 단백질과 여러 가지 비타민과 광물질을 함유하지만, 다섯 살 미만의 어린이가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18세기 청나라 건륭황제는 순두부 시금치 찌개를 맛있게 먹었지만, 칼슘 부족 현상을 겪었다. 요리할 때 끓는 물에 살짝 데치고 나면, 시금치의 수산(蓚酸)이 거의 다 빠져나가므로 좋은 방법이 된다.

시금치는 파, 파릉, 파릉채, 파사초라 했다. 7세기 초, 당나라 때 현장법사의《대당서역기》에 호란(지금의 허톈)에서 나는 시금치를 '파'로 처음 기록됐다. 647년 당나라 태종 때 "이파라국(지금의 네팔)에서 파릉채가 진상되었다"고, 961년에 편찬된《당회요》에 전한다.

9세기 유우석의《유빈객가화록》에는 "파릉은 서쪽 나라에서 자라는 것인데, 어떤 승려가 그 씨앗을 가지고 왔다. 이것은 파릉국에서 자라는 식물이다는 말이 와전되어 파릉이 된 것이다"는 내용이 북송 때 장우석 등의《가우본초》와 명나라 때 이시진의《본초강목》에 전하면서 알려졌다.

시금치의 명칭은 명나라 때 난무약의《전남본초》에서 뿌리가 붉다고 하여 홍근채,《품회정요》에는 적근채라 했다. 명나라 때《본초강목》에는 파릉채와 또 파사초라 적고, 서남아시아의 고대 이란(波斯) 등으로부터 전래하여 붙인 이름이다. 또 민간에서는 쥐의 입 모양을 닮았다고 서근채라 했다. 특히 1742년 완성된《흠정수시통고》에서는 "짙은 청록색 이파리와 붉은 뿌리를 가진 시금치를 아름다운 앵무새에 비교하여 앵무채"라고, 또 시금치를 홍취녹앵가 또는 황고채라 불렀다. 이것은 "청나라 건륭제가 어느 농가에서 할머니로부터 받은 점심 반찬이 '금과 백옥을 상감한 빨간 부리에 짙은 녹색 용모를 한 앵무새라고 칭합니다'고 한 대답에서 유래했다.

서남아시아와 아르메니아 등지가 원산지인 시금치는 조선 초기에 중국 명나라를 통해 전래하였다. 1445년 세종 때 편찬된《의방유취》에는 금나라의《유문사친》을 인용하여 시금치를 약재로 분류하고, 파릉채라 처음 기록됐다. 조선 전기의 서거정은 시금치를 파릉이라, 가을철에 좋은 음식으로 노래했다.

조선 사역원의 중국어 교재인《노걸대》와 최세진의《훈몽자회》에는 로 등장한다. 허준의《동의보감》에는 파릉과 시근채(是根菜)로 기술했다. 조선 후기의 김창협은《노가재집》에 남긴 시, <파릉>은 일명 시근채(時根菜)라며, 유우석의《가화록》을 인용하였다. 영조 때의 이갑은《문견잡기》에서 중국의 시금치ㆍ상추 등은 모두 우리와 같다고 했다.

이란 등 고대 페르시아에서 동방 무역로를 따라 전해진 시금치는 조선《세종실록》에까지 등장하듯이 약재료와 선물로 귀하게 여긴 식물이다. 비록 20세기 뽀빠이의 전설로 끝난 해프닝의 주인공, 시금치는 마음속에 자리하는 추억의 에너자이저 음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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