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1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9.07.08 17:47:30
  • 최종수정2019.07.08 17:47:30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잠은 시나브로 오고 배고픔은 눈 뜨면 달려온다"고 했다. 예로부터 햇보리가 나오기 전까지를 보릿고개라 불렀다. 이 고갯길[麥嶺]을 넘어야 보리쌀이나 햇감자를 먹을 수 있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고개라 불렀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보릿고개 배고픔이야말로 생사가 왔다 갔다고 한다. 보릿고개는 힘든 노동으로 '등골 빠진다'라는 말보다 더 무서울 정도였다.

햇감자는 음력 6월부터가 제철이다. 땅콩, 고구마 등과 마찬가지로 땅에서 얻는 구황(救荒)작물이다. 그야말로 배고픔을 이겨내는 식물이란 뜻이다. 1925년 발표된 김동인의 단편소설《감자》에서 감자는 가난의 상징, 굶주림을 면해주는 식량이었다. 중국 명나라 때 서광계가 1639년 편찬한《농정전서》에도 고구마와 함께 감자 등은 구민(救民)의 작물이라 했다. 그로부터 명과 청나라에 가는 사신, 역관 등에게 여러 차례 고구마 등을 가져오라고 부탁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전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물인 옥수수 그리고 쌀과 밀, 그다음 순위가 감자(甘藷)일 정도다. 적응력이 뛰어난 재배식물인 감자는 해안가에서부터 히말라야나 안데스 고산지대에서까지,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에서부터 연중 대부분 눈이 덮여 있는 그린란드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가 꽃말인 감자의 빛깔은 누런 황금색이고 속은 하얀색이다. 지금엔 개량종인 자주감자가 인기다.

남미의 안데스 고원이 원산지인 감자는 스페인 정복자들을 통해 1570년대 유럽으로 건너갔고, 중국에는 명나라 때 전래했으며, 일본에는 1603년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전래했다. 조선시대에 감자는 북저(北藷) 또는 토감저(土甘藷)라 불렀다. 1820년대에는 청나라 사람들이, 1830년대는 선교사들과 유럽 상선에서 감자 재배법을 가르쳐줬다는 내용이 전한다. 조선 순조 때인 1824~1825년에 만주를 거쳐 북쪽 지방에서 들어왔다. 서유구가 1825년 쓴 농서《행포지》에는 북쪽에서 들어온 감자란 뜻의 '북저'라 처음 기록됐다.

감자는 1766년 강필리가 고구마의 재배·이용법에 대한《감저보》에 '감저', 1830년대 유희의《물명고》에 한글 '감져'라 처음 기록됐다. 1862년 김창한의《원저보》에는 전북 해안에 온 영국의 선교사가 감자 씨앗과 재배법을 전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제마의《동무유고》에는 저(藷) 또는 감저라 적었다. 1918년《조선농업대전》에 감자와 '감'이란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감저'는 고구마와 감자의 통칭이었지만, 고구마는 남감자, 감자는 북감자로 불리다가 점차 감자만을 지칭했다. 1832년 이규경의《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두만강을 넘어 청나라에서 들어온 감자를 '북감저'라 했고, 옛사람들은 "말에 달고 다니는 방울처럼 생겼다"고 해서 '마령서(馬鈴薯)'라 부르기도 했다.

중국 광둥성이나 대만에서는 마령서라 하고, 동북방에서는 토두(土豆), 서북방에서는 '양우(陽芋)'인데 토란과 비슷한 뿌리의 모양에서 유래한 말이다. 함경도 방언으로는 '갱게', 경남에서 궁감자, 전남에서 북감자, 전라도·충청도에서는 고구마를 무수감자(무감자)나 진감자, 감자를 하지감자라고 부른다. 제주에서는 고구마를 감저, 감자를 지슬(地實)이라 부르는데 '땅의 열매'라는 제주도 방언이다.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꽃이 아름다워서 '신대륙의 선물'이라 불리는 감자는 1880년대 서울지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직접 재배를 했다는 기록과 함께 독일인 웃토메그린이 1920년대 초에 개발한 난곡 1호~5호 품종이 1930년대 강원도 지역에서 대규모로 재배되면서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땅속의 사과'라 불리는 감자는 탄수화물과 비타민C가 풍부한 덩이뿌리 채소이다. 반찬과 수프, 패스트푸드로 사용하는 감자는 주식이자 간식이다. 이밖에도 주정의 원료로, 감자녹말은 당면 또 공업용 원료이다. 감자를 먹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싹이 돋는 부분에 솔라닌이라는 독성이 있어 싹이 나거나 빛이 푸르게 변한 감자는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