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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5.28 17:04:07
  • 최종수정2018.05.28 17:18:40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기원전 164년 중국 전한시대의 회남왕 류안이 발명한 두부는 오미(五美)를 갖춘 음식이다. 맛이 부드럽고 좋으며, 은은한 향이 있으며, 색과 광택의 아름다움이 있고, 모양이 반듯함에 있다. 먹기에 간편함이 그것이다. 부드러운 식감 때문에 뼈 없는 고기, 콩에서 나온 우유(菽乳)로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는 만들어진 그 모양을 뜻하는 '포(泡)' 또는 두포라 하였다.

두부의 '부(腐)'는 썩은 것이 아니라 연하면서도 말랑말랑하다는 뜻이다. "밭에서는 나는 쇠고기"라 불리는 콩은 영양소가 응축되어 있어 우리 몸에 유익하다. 단백질과 필수지방산이 풍부하여 고기를 대신할 뿐만 아니라 식감이 부드러워 콩을 바로 먹는 것보다 소화가 잘 되고 흡수율도 높아 오래전부터 애용되어왔다.

불로장생의 비법을 찾던 회남왕 류안이 지은 '회남자'에서 두부에 대해 적어 놓았다. 중국 북송 때 도곡의 '청이록'에는 "아침시장에 두부가 여러 개 나와 있는데 읍내 사람들은 두부를 소재양이라고 불렀다." 명나라 라기의 '물원'과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두부를 만드는 방법은 전한 회남왕 류안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청나라 고사기의 '천록지여'에는 "두부의 기술은 하, 상, 주 삼대를 전후해서는 이러한 음식물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한나라 회남왕 류안에 이르러 그 기술이 처음으로 세상에 전해졌다."고 했다. 조선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과 '군쇄록' 그리고 18세기말 '재물보'에서도 중국의 기록과 같이 적었다.

두부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10세기 중엽이다. 고려 성종 때 최승로가 982년 6월 상소한 '시무 28조'의 기록, 성종 왕이 "미음과 술과 된장국을 길가는 사람들에게 베풀었다"며 콩으로 만든 국을 기록하였다.

중국의 황제가 즐겼다는 두부는 고려 말기부터 왕실, 능원(陵園)에 공납하던 즉석 진상품이었다. 사찰의 기관으로 제수용 '두부를 만든 조포사(造泡寺)'는 1,370년 고려 공민왕 때의 광암사가 처음이다. 조포사의 기능이 확대된 조선시대에는 태조 때의 개경 연경사, 한양 흥천사, 세조 때의 양주 봉선사가 유명하였다.

민간에서 먹던 두부는 고려 말의 이색이 지은 "큰 집에서 두부를 구하여 먹었다"란 시에 처음 등장하는데, 그는 두부를 '하늘이 이 땅에 내린 선물'로까지 여겼다. 조선 초기의 권근은 '양촌집'에서 "누렇게 익은 콩이 눈 같은 하얀 물을 뿜어, 펄펄 끓는 가마솥 불을 정성들여 거둔다. 기름이 번지르르한 동이 뚜껑을 열고, 옥같이 자른 것이 밥상에 가득 쌓인다." 서거정은 '사가시집'에서 "지인이 보내 온 두부는 서리 빛보다도 더 하얀데, 잘게 썰어 국 끓이니 연하고도 향기롭네. 부처 숭상한 만년엔 고기를 끊기로 했으니, 채소나 많이 먹어 쇠한 창자를 보하려네."라며 두부를 예찬하였다.

명나라 황실에 수출된 우리나라 두부제조 기술이었지만 조선 중기까지도 희귀음식이던 두부는 그 후 백성들의 음식으로 자리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는 두부를 다섯 가지 맛을 갖춘 음식이라 하였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서울 창의문 밖(세검정) 사람이 두부를 잘 만들며 그 연하고 매끄러운 맛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정약용은 '아언각비' 두부 편에서 "모든 능원에는 승원이 있어 두부를 바치는데 이름 하여 조포사라 하였다." 조포사의 전매특허이던 두부는 해당 스님들이 장인이었다. 전란으로 말미암아 콩을 구하기도 힘들었지만 두부를 만드는 일도 여간 힘든 노동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스님들이 두부를 "콩이 맷돌에 갈리어 흘리는 눈물로 만든 음식"이라 하여 '두루(豆淚)'로 불렀다가 후대에 두부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서양에서 '살이 찌지 않는 치즈'로 알려진 토푸(Tofu)인 두부는 2,000년 전부터 채식주의자들과 승려들이 가장 의존하는 식품이다. 또한 사찰의 공양물로서나 우리네 식단에서 예나 지금이나 두부가 없는 밥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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