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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4.15 18:05:18
  • 최종수정2019.04.15 18:05:18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

예로부터 햅쌀과 햇김이 나올 때는 설렌다. 3월부터 햇김이 시중에 나왔다. 해조류인 김은 “바닷가의 바위옷 같다”고 해의(海衣)·해태(海苔)라 불린다.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 주로 먹는데, 영국 웨일스 지방에서도 먹는다. 간편한 음식의 대명사다. 소풍이나 여행 갈 때, 밑반찬이 없을 때 좋은 찬거리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에게 김은 용왕이 준 선물이다.

세계적으로 약 80여 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방사무늬김, 둥근돌김, 긴잎돌김, 잇바디돌김 등 10여 종이 알려져 있다. 이파리가 큰 김은 겨울김, 작은 김은 가을김이라 한다. 수온이 낮은 겨울철에 나는 김은 12월부터 4월까지 6~7번 채취할 수 있다. 처음 채취한 ‘초사리김’은 향과 맛이 적고, 그다음 채취한 김에서부터 고유한 제맛이 난다.

중국 명나라 때 이시진의《본초강목》에서 김은 “신라의 깊은 바닷속에서 채취하는데, 허리에 새끼줄을 묶고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 따온다. 4월 이후로는 대어가 나타나 해치기에 채취할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600년부터 간석지에 세운 대나무나 참나무 가지에 김이 달라붙어 자라게 하는 섶 양식이 시작돼 요즈음에도 쓰고 있다. 1840년에는 대나무 쪽으로 발을 엮은 떼발 양식을 개발됐고, 1920년에는 일정 기간만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조절하는 뜬발 양식이 시작됐다.

600년경 중국 양나라의 도홍경이 지은《신농본초경집주》에 “영류 등의 결기를 치료한다”며 김을 ‘자채(紫菜)’라 처음 기록했다. 당나라 맹선의《식료본초》와 진장기가 지은《본초습유》에서도 자채라 적고, “많이 복용하면 복통이나 발병을 촉진시키며 흰 거품을 토한다. 뜨거운 식초를 조금 마시면 치료된다”고 했으며, 주로 약용으로 쓰였다.

우리나라에는 5세기 말부터 남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김을 채취해 먹었다. 신라 때의 제천 음식으로 쓰였다고《삼국유사》에 기록됐다. 고려의 이색은《목은시고》에서 선물로 보내준 김에 대해 감사의 시를 전하면서 ‘해의(海衣)’라 처음 적었다. 김은 고려 중기부터 일반화된 음식이었다.

김 양식의 유래는 1424년에 편찬된《경상도지리지》에 나온다. “경남 하동지역에 ‘약 260년 전 어떤 할머니가 섬진강 하구에서 김이 붙어사는 나무토막에서 채취해 먹으니 맛이 좋아 대나무발을 물속에 세워 인공적으로 김을 착생시킨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1640년 인조 때의 의병장 김여익이 충청 태인도에서 고안한 김양식법이 대중화되고, 그의 성을 따서 ‘김’이라 불렀다고 1714년 광양 현감 허심이 세운 비석의 묘표에 전한다.

세종 때부터 진상품 등으로 쓰이면서, 충청 태안군과 경상 울산·동래·기장현 등 9개 군현의 토산으로 기록됐다. 이밖에《왕조실록》에는 김을 진상품 또는 무역품의 하나로 사고팔았던 기록까지 전한다. 실학자 이익은《성호사설》에서 “민간에 김(海衣)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바로 바다 돌 위에 돋는 이끼로 빛깔은 붉다. 그것을 따서 마치 종이처럼 조각으로 만드니, 이것이 조(組)라는 것인 듯하다”고 이미 대중화된 김이 ‘마른김’으로 유통되었음을 기록했다.

1798년 이만영은《재물보》에서 “해의는 자채의 다른 이름인데, 우리말로 ‘짐’이라 한다.” 정약용은《경세유표》에서 “태(苔)는 해태이다. 감곽(甘藿) 또는 감태(甘苔)라 부르기도 한다. 태에는 속명으로 해의, 방언으로는 ‘김’이라 하고 자태(紫苔)와 청태(靑苔) 등 5~6종이 있다”며 그 명칭을 적었다. 이만도의《향산집》에는 “산중에 스님들이 김 선물을 받고 감격스러웠다”고 했을 정도다. 구한말의 요리책《시의전서》와 대중잡지《별건곤》에서도 김으로 만든 음식이 대거 등장했다.

2차 세계대전 때 김에 대해 알지 못했던 미국인이 검은 종이를 먹는다고 했지만, 김은 여러 가지 비타민이 풍부한 바다의 채소다. 쌀밥을 보완하는 먹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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