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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온 천하가 다 부족할 때가 바로 한겨울이다. 산중사찰에서도 섣달부터 김장을 마치고 기나긴 동안거에 들어 서있다. 숲속의 다람쥐들도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종종걸음으로 이곳저곳에 저장하느라 가을 한철을 다 보냈다. 그러나 다람쥐나 청설모는 건망증이 많아 자신들이 저장한 90%의 도토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땅에 묻힌 도토리는 새봄에 다시 참나무 싹을 틔우게 된다.

산에서 나는 곡식(山穀)이자 구황작물로 분류되는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는 조선의 숙종과 얽힌 이야기로 '꿀밤'으로도 불린다. 미행(微行)으로 이름난 숙종은 어느 날 도성에 온 산골영감의 꿀밤보따리에서 얻어먹은 꿀밤이 예전에 먹었던 꿀밤음식과 너무 달라서 "도로(다시) 떫다고 하여 도터리 즉, 도토리라 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로 서울 경기도에서는 도토리, 경상도에서는 아직 꿀밤이라 부른다.

"개밥에 도토리"라는 속담은 도토리를 먹지 않는 개의 밥그릇에 마지막까지 남아 뒹구는 것을 비유해서 외톨박이로 눈총 받고 천시하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속담의 이면에는 우리 조상들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쟁과 흉년이 돌 적에 도토리 밥(묵밥)을 지어 먹고 살았던 험난한 과거사도 같이 담겨있다.《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강원도에는 겨울에 도토리 수십 가마니가 쌓여있어야 부잣집 소리를 들었고, 조선시대에 도토리는 관청의 군자창에 반드시 저장해야 하는 곡식으로 비상식량이었으며 심지어 중종 때에는 "백성들이 쌀을 팔아 관청에 공납할 도토리를 마련했다"고 하기에 주객이 전도된 시절도 있었다.

이 시절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뭇 백성들인데 그중에서도 산중사찰의 스님들 그리고 도토리를 주식으로 하는 다람쥐였다. 조선 선조의 수라상 음식으로서나 고려 말의 충선왕은 "흉년에 백성들과 고통을 같이 한다"《고려사》는 정치적 상징으로 궁중에서 도토리로 만든 음식을 먹었다지만 거란과 몽고의 침략으로 황폐화된 국토에서 도토리까지 공납해야만했을 뭇 백성들의 아픔은 더욱 더 컸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도토리(橡實)를 곱게 갈아 만든 쫀득쫀득한 도토리묵(橡實泡)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음식을 만들었다. 메밀묵, 청포묵 등과 함께 단순히 허기진 배를 채우고 굶주림을 면하는 구황식품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반찬으로 다양한 웰빙요리로 발전시켜 놓았다. 봄철에 차고 청량한 맛의 녹두묵(청포묵) 등을 먹고 여름과 가을에 쌉싸래하고 차가운 맛의 도토리묵을, 그리고 추운 겨울날에는 텁텁하지만 구수한 맛의 메밀묵을 골라먹는 풍류까지 즐겼다. 송송 서린 배추김치와 메밀묵을 한 양푼에다 무쳐 먹는 입맛은 서민적이고 향토적이다.

"찹쌀 떠~억 메밀묵 싸~려"와 같이 주전부리가 풍족하지 않던 시절 야식으로 즐기던 메밀묵은 겨울밤 간식이기도 했지만 동화 속 도깨비와도 나눠 먹는 음식이다. 섣달 그믐날이면 메밀묵으로 숲속에 사는 도깨비와 신령을 대접하는 풍습까지 생겨났고 동제(洞祭)의 음식으로도 받쳐졌다. 이와 같이 도토리와 메밀묵은 《대반열반경》에서 보드랍고 깨끗하고 법다운 것이라는 세 가지 덕을 갖춘 음식일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신석기 시대로부터 식용해온 가장 신성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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