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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재

은퇴&진로설계연구소 대표

34년간 꾸준히 해오던 출근 대열에서 이탈했다. 퇴직했기 때문이다. 이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출근하지 않으니 당연히 퇴근도 없다. 퇴근 대열에서도 이탈한 것이다. 두어 달 전 출근길, 물 흐르듯 길게 줄지어 가고 있는 차들의 행렬을 무심히 따라가던 중 떠오른 생각, '아! 이 대열 속에서 이탈할 날도 멀지 않았구나'였다.

이탈하는 것은 출퇴근 대열뿐만 아니라, 점심시간이면 회사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할 곳을 찾아다니던 대열, 저녁이면 회사 동료들과 술 한잔하거나 회식하는 사람들의 대열, 업무 관련 소통을 위해 개설된 단체 채팅방에서도 이탈해야만 했다.

익숙한 것들과도 결별했다. 출퇴근길에 즐겨 듣던 라디오 방송, 정들었던 동료들, 수십 년간 해왔던 회사일, 다녔던 직장의 이름과 전화번호, 팀장님이라고 불리어지던 나의 호칭,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자신있게 건네주던 나의 명함 등과도 결별했다.

생각해보니 이탈은 지금처럼 회사에서의 퇴직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 보면 우리는 숱한 이탈들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하나의 과정을 마치면 그 조직이나 무리에서 이탈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유치원을 나온 사람이 거의 없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졸업하는 것부터 이탈이 시작된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대학교까지 각급 학교를 졸업하는 것도 이탈에 해당한다. 하나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나오면서 학교와 친구들의 무리에서 이탈하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한 지사에서 다른 지사로 전보 발령을 받거나 부서를 이동하는 것도 이탈에 해당한다. 기존에 속해있던 조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회사 내에서 단기적인 교육과정을 수료하거나 동호회 모임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탈들은 곧바로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다른 조직이나 부서에 전입하게 되는 경우라서, 대열을 갈아타기 위한 이탈에 지나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이탈하더라도 다른 곳에 곧바로 합류하기 때문이다. 소속의 변경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작은 스트레스만 견뎌내면 될 일이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좋은 상위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년퇴직으로 인한 이탈은 어떤가? 이것은 소속이나 대열의 변경이 아니라 방출에 가까운 이탈이다. 이탈하면 다시 들어갈 곳이 없다. 그러니 상실감과 소외감이 클 수밖에. 특히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 장기 근무하면서 고위직까지 올라있다가 이탈하는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업무, 익숙한 환경 속에서 일상 반복적인 생활을 하던 중 맞게 되는 이탈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이탈의 경험을 잊은 지 오래인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준다.

우리 세대에게 그동안의 삶은 정형화된 코스가 있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했고, 취직에 성공하면 얼마 있다가 결혼을 했다. 결혼 후에는 자녀를 하나둘 출산했고, 그 뒤로는 자녀 양육과 집값 상환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이른 친구들은 정년퇴직하기 전에 자녀를 결혼시키기도 했으며, 간혹 손주를 본 친구들도 있었다. 그다음은 은퇴다. 물론 50대 초중반에 이른 퇴직을 맞아 직장을 한두 번 옮긴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 이런 코스로 살아왔다.

문제는 퇴직 이후의 삶에는 이런 정형화된 코스가 없다는 것이다. 반드시 재취업을 해야 하는 것도, 귀농·귀촌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까지는 남들이 가는 대로 따라가면 되었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 없다. 꼭 해야만 하는 것도 없다. 숫자로 된 나이는 같더라도 겉모습, 건강, 직업역량, 부의 축적 정도, 가치관 등 모든 것이 다르다. 은퇴 후 펼쳐지는 삶의 모습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는 다시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 들판에 홀로 버려져 있는 것보다는 조직 속에, 무리 속에 들어가 있을 때가 더 마음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재취업이든 취미, 봉사활동, 교육과정이든 새로운 대열을 찾아보자.

이전처럼 상사로서의 권위를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시간에 얽매이거나 실적압박에 시달리지도, 승진에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되는 여유롭고 느긋하고 마음 편한 대열에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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