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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재

국민연금공단 청주지사 노후준비서비스 팀장

할아버지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가 보니 거기에는 불판 위에 맛있게 구워진 고기가 있었다. 젊은 손님들이 먹고 있는 고기였다. 내가 보기에도 고기는 참 먹음직스럽게 구워져 있었다. 무슨 궂은 일을 하시는 지 입고 계신 작업복은 지저분해 보였고, 까만 얼굴에 비쩍 마른 체형이셨다.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자판기 커피를 드시러 잠깐 들어오신 모양이다.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할아버지는 젊은 손님들이 먹고 있는 고기에 눈길을 주고 계셨다. 저녁 8시가 넘었는데 아직까지 작업복 차림인 걸 보면 퇴근도 못하신 거 같았다.

퇴근한 아내가 오늘은 직장에서의 일이 너무 힘들었다며, 저녁준비에 대한 파업을 선언하고 외식을 감행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집근처 식당을 찾았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자판기 옆에 서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안해하실 것 같아서 얼굴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나이는 꽤 들어 보였다. '혹시 폐지 줍는 분인가' 하는 생각에 나오면서 주변을 둘러봐도 폐지를 실은 리어카는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도로 경계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젊었을 때는 무슨 일을 하셨을까. 자녀들은 없으신가. 형편이 어려우신가 아니면 그냥 소일거리로 하시는 건가·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냥 무심히 지나칠 일이지만 노후준비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주변에서 노인들을 볼 때마다 관심이 간다. 여건이 허락되면 말도 붙여보고 궁금한 게 있으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한다.

사연이야 어찌되었든 할아버지는 늦은 시간까지 궂은 일을 하고 계신 모양이다. 그런 종류의 일은 '그냥 소일거리로'라든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시간까지 그런 일이라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 분명했다. 하기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실질 은퇴연령이 만 71세라고 하는 걸 보면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것이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심각하다는 얘기는 이미 언론과 책에서 많이 다루었다. 노인들의 절반가량이 상대적 빈곤선 아래에 놓여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대적 빈곤선이란 중위소득의 50%에 해당하는 소득을 말한다. 또한 경제적인 이유로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 하는 노인들이 46.2%에 달한다고 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

지금의 노인세대들이 젊었던 시절에는 '노후준비'에 대한 인식이 낮았으며, 오래 살게 될 거라는 경고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부분 먹고살기 바쁘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매달리느라 본인들의 노후는 챙길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 이런 뒷바라지로 삶의 기반을 잡은 자녀들이라도 부모 부양에 나서야 하는데 자녀세대의 생각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직 노후를 맞지 않은 세대에게 당부하고 싶다. 그대들이 지금 여유있게 산다고 노후에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믿지는 마라. 지금의 여유가 저축도 없이 버는 돈 다 써가며 얻는 여유라면 더욱 그렇다. 지금 먹고살기도 바쁜데 노후는 무슨 노후냐는 생각에 '노후준비=나중에 형편되면 하는 거'라는 공식을 내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자.

누구에게나 노후는 찾아온다. 그리고 그 노후는 생각보다 길다. 수명이 갈수록 늘어나기에 나이가 젊을수록 더 긴 노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젊을수록 노후준비도 더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형편이 어려워서 노후를 준비할 여력이 없다고· 우리가 100살까지 산다고 해서 그때까지 계속 일을 할 수는 없다. 벌 수 있을 때 번 돈으로 그때까지 살아야 한다. 그러니 지금 버는 돈이 많든 적든 그 속에는 나중에 쓸 돈도 들어 있는 것이다. 지금 어렵다고 다 써버리면 나중에 쓸 돈까지 다 앞당겨 써버리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나중을 위해 남겨놓자.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어느덧 선선함이 실려온다. 맹위를 떨치던 한낮의 뙤약볕도 차츰 시들해지고 있는 걸 보니 올해도 조만간 연말연말 할 것 같다. 연말이 되면 나의 소득이 끊기는 시점도 한 발 더 다가오겠지. 연말이 되어 추워지면 커피를 드시던 할아버지의 일거리가 끊기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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