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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재

국민연금공단 대전세종지역본부 노후준비서비스 팀장

이제 꼭 6개월 남았다. 올해 6월 말이면 나도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 지난 12월 말, 나보다 6개월 앞서 나가는 선배들을 떠나보냈다. 코로나19 방역조치 때문에 다 같이 모여서 회식을 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고, 약간 완화되었던 방역 조치가 다시 강화되기 직전 간신히 8명이 모여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 자리에 동석했던 나는 마치 내가 그 자리의 주인공이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착잡했다. 하긴 6개월 후엔 내가 정말 주인공이 되니 남의 일 같지 않은 게 당연했다.

식사하러 가기 전 사무실에서는 간단한 퇴임식 행사를 가졌다. 이번에 퇴직하는 선배는 총 세 분이었다. 예전 같으면 단 한 분이 퇴임을 하더라도 저녁에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퇴임식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여가며 송사와 답사를 주고받고, 차가운 소주잔이라도 주고받았을 텐데, 요즘 세상이 어디 그런가.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찍었지만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찍으나 마나 한 사진으로 남을 뿐이었다. 멋진 은퇴식은 꿈도 꿀 수 없는 참 불행한 시기에 나가는 선배들이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년퇴직은 정말 중요한 생의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살아온 인생의 절반이 넘는 30년 이상을 몸담아왔던 회사, 아침에 일어나면 갈 곳이 있었고 그곳에 가면 내가 앉을 자리가 있었던 일터, 비슷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쉽게 친해지고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들이 있는 조직,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자산을 축적할 수 있도록 돈을 벌게 해주었던 직장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정말 가족보다 더 소중한 직장일 수도 있고, 생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직장을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평생에 걸쳐 이룬 업적, 인정받은 능력, 올라간 지위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나이라는 장벽은 넘을 수가 없다. 아직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젊어, 몇 년을 더 일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한낱 나이 때문에 나가야 한다는 게 원망스럽다.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 반면 '오는 데는 순서가 없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있다.' 서로 상반되는 이 말들은 내가 은퇴예정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할 때 수강생들의 공감대 형성 및 분위기 전환을 위해 내는 퀴즈다. 수강생들에게 이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어본다. 그럼 앞의 말은 대부분 맞힌다. 그렇다. 앞의 말은 장례식장에 갔을 때 가끔 듣는 말이다. 젊은 사람이 불행히도 너무 일찍 갔을 때 세상을 한탄하며 주고받는 말이다.

그런데 뒤의 말은 잘 맞히질 못한다. 아니 대략 알고는 있지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입사와 정년퇴직'을 의미한다. 이 말은 강사인 내가 만든 말이다. 회사에 들어올 때는 입사 시기와 입사 나이들이 다르다. 그러나 그 회사를 정년퇴직할 때는 철저히 나이순으로 나가게 된다. 수강생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면 현실을 인정하는 끄덕임과 함께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지나간다.

내가 강의 초반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수강생 여러분이 퇴직을 하는 것은 여러분의 잘못 때문이 아니며 세상의 규칙 때문일 뿐이니, 운명처럼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자는 위로와 함께 은퇴 후의 삶을 위한 교육에의 동참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다. 어느 유명 가수가 부르는 '아모르파티'와 같은 얘기이며, 닫히는 문에 미련을 두지 말고 열리는 문을 바라보며 나가자는 취지다. 닫히는 문을 계속 바라보고 있어봤자 더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기에.

생각하면 서글퍼지는 일이기에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지만 어느덧 내 차례가 다가왔다. 강의하면서 남들에게는 "은퇴로 인한 심리적 충격을 덜 받으려면 미리부터 퇴직하는 선배들을 보고, 그분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감정이입도 해가면서 예방주사를 맞아 놓는 게 좋습니다"라고 해왔지만,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고 보니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거 같다.

남은 6개월도 금방 갈 것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단축 근무로 인해 출근일수가 줄어든 상태에서는 더 빨리 갈 거 같다. 그나저나 내가 퇴직할 즈음엔 제발 회식도 하고, 마스크도 벗고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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