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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재

국민연금공단 청주지사 노후준비서비스 팀장

아들을 경기도 부천에 내려놓고 왔다. 올해 간호학과 4학년인 아들은 요즘 실습하러 다니기 바쁘다. 이번에는 연고지를 떠나 멀리 경기도에 있는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가져가야 할 짐도 많고 길도 멀고 해서 승용차로 데려다주고 왔다. 손을 흔드는 아들을 뒤로하고 떠나오면서 왠지 가슴이 짠했다.

몇 년 전 아들이 군대 생활할 때에도 휴가가 끝나는 날엔 꼭 부대 앞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아내의 넘치는 사랑 때문이다. 그때 겪은 이별에 비하면 이번 이별은 기간도 짧고 거리도 가깝고, 군대 생활만큼 힘든 생활을 할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짠할까· 그동안 내가 나이를 몇 살 더 먹은 탓인가.

우리 부부에겐 아들이 둘이 있다. 큰아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어 집을 나가 산다. 대학교도 서울로 가고, 직장생활도 서울서 하고 있어 우리 부부 곁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작은아들은 다행히 집 근처 대학에 다니고 있어 아직까지는 우리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취업하게 되면 어찌 될지 모르지만 아직은 우리 품 안에 있다. 나이 들면 자식들은 부모 곁을 떠나게 마련이고, 부모의 집은 빈 둥지가 되어간다. 늙은 부모와 자식들이 떨어져 사는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 할머니 두 분이 버스에 올라온다. 두 분 다 치매안심센터 쇼핑백을 들고 타는 걸 보니 거길 다녀오는 길인 것 같았다. 한 분이 옆자리에 앉도록 배려해 드리고 인사를 했다.

"치매 검사받고 오시나 봐요·"

역시 그렇단다. 치매에 안 걸리려고 미리미리 검사받으러 다니신단다. 다행히 아무 이상 없으시단다. 잘하시는 거라고 칭찬해 드렸다. 그리고 건강보험공단에 들러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하고 오셨단다. 늙고 병들어서 자식들 고생 안 시키려고 그러셨단다. 두 분이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데 두 분이 같이하고 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정말 신세대 할머니들인 것 같았다. 그런 것까지 할 생각을 하다니….

옆자리 할머니는 나를 보니 자기 아들이 생각난다고 했다.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하나밖에 없는 그 아들이 뉴질랜드에 가서 산다고 했다. 자주 들어오는지 물으니 3년에 한 번씩 온단다. 왜 그렇게 드문드문 들어오는지를 물으니 차비가 너무 비싸서 그렇단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그렇게 멀리 살고 있고, 자주 오지도 못하니 얼마나 보고 싶을까·' 하는 생각에 위로의 말씀을 드리려 했더니 할머니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아이고, 자주 오지 않아도 요즘엔 휴대폰이 있어서 문자도 하고, 얼굴 보고 통화도 할 수 있어 좋아."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가 오는데 뭐. 할머니~~ 하고 손자들이 문자 자주 해. 요즘 얼마나 좋은 세상인지 몰라"

할머니는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이미 그런 걱정과 위로를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예 그에 대비한 항변을 미리 준비해 놓은 것처럼 술술 쏟아 놓으셨다. 그런데 할머니의 그 준비된 항변(·)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아무리 화상통화를 하고 문자 대화를 자주 나눈다고 해도 마주 앉아서 얼굴 보고 숨소리 느끼며 대화하는 것에 비길 수 있을까· 명절이면 자식과 손주들이 찾아와 시끌벅적한 이웃 친구네 집을 보며 할머니는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할머니가 미리미리 치매 검사를 받으러 다니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신청까지 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이유가 나중에 치매에 걸리거나, 많이 아프게 되더라도 곁에서 보살펴줄 자식 하나 없는 게 불안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노인복지학에서 나오는 용어 중에 '국이 식지 않는 거리'라는 표현이 있다. 자식이 국을 끓여서 부모님께 갖다 드리는데 국이 다 식기 전에 도착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말함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늙은 부모와 걱정을 한가득 안고 있는 자식, 둘 다 든든하고 안심할 수 있는 거리는 이 정도의 거리가 아닐까.

우리 집은 작은 아들만이라도 이 정도의 거리에 살았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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