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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독극물 테러를 당한 북한 김정남의 사진이 공개됐다. 보라색 폴로 반팔 라운드 셔츠와 루이비통 검정 벨트에 청바지 그리고 갈색 가죽스니커즈를 신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늘어진 그의 셔츠자락 아래로 살찐 뱃살이 보인다. 평범한 마카오 사람과 흡사하다.

오른쪽 손목에 두른 황토색 구슬팔찌가 시선을 잡는다. 묵주나 염주로 보이는 팔찌가 단순한 악세사리였다 해도 종교에 의지하고 싶은 김정남의 마음이 전해진다.

1971년 5월 10일 생, 우리나이로 마흔 일곱이다. 그의 출생은 웬만한 연극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김정남을 생산했을 당시 생모 성혜림은 카프(KAPF)문학을 대표했던 월북 작가 이기영의 아들로 더 알려진 김일성종합대 연구사 이평의 부인이었다. 이기영은 며느리가 김정일의 아이를 낳는 기막힌 수모에 분을 참지 못하고 절필했다고 한다.

김정일이 유부녀와 낳은 자식을 김일성에게 알린 시점도 극적이다. 아버지의 담당 간호사가 이복동생인 김현을 출산한 기회를 틈 타 손자의 존재를 김일성에게 알렸으니 말이다.

어쨌든 김정남은 북한 최고 권력자의 장손으로 거칠 것 없이 성장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프랑스어 특수학교를 시작으로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학교와 제네바 대학교를 거치며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까지 능통했던 김정남은 즉흥적인 성정으로 인해 망나니로 알려지기도 했다. 여자를 놓고 시비가 일자 북한제 58권총을 천장에 발사했다는 '고려호텔 총기난사사건' 등 김정남의 몇몇 파행은 유명하다.

김정남이 아버지의 눈 밖에 난 사건이 가짜여권 입국 의혹이다. 2001년 5월 도미니카 국적의 위조여권을 이용해 일본에 밀입국하다 발각된 김정남은 당시 부인 및 아들로 보이는 어린이와 함께 입국했고 도쿄 디즈니랜드를 가기 위해 왔다고 진술했다.

신분을 노출시켜선 안 되는 그가 가족까지 데리고 밀입국을 하다 발각돼 중국으로 추방 된 어설픈 행동을 김정일은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가 후계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예측이 돌았다.

2011년 12월 사망하면서 김정일은 "김정남을 많이 배려해라, 그 애는 나쁜 애가 아니다. 그 애로를 덜어줘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김정은의 입장에선 3대 세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두 명의 백두혈통의 공존은 정리해야 할 걸림돌이었다. 생모가 재일교포인 김정은의 정통성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었기에 맏형의 존재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더럽고 잔인한 형제간의 권력다툼으로 조조의 아들 조비와 조식의 싸움을 꼽는다.

삼국지 군웅 중의 한 명인 조조는 군막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은 문학가였다. 조조의 다섯 아들 중 둘째 아들인 조비와 넷째 아들인 조식이 아버지의 문학적 재능을 이어 받았다. 조비는 대문호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우인 조식은 그를 능가하는 천재였다.

글재주가 비범한데다가 무예까지 뛰어난 작은 아들을 편애한 조조는 큰아들 조비 대신 조식을 태자로 세우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아버지가 죽자 형제의 비극이 시작됐다. 조조가 죽은 뒤 위왕을 세습한 조비는 후한의 헌제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위(魏)의 문제(文帝)가 된 후 조식을 제거할 궁리를 했다.

이 때 조비에게 한 신하가 아첨을 했다. 모두가 명시인이라고 칭찬하는 조식에게 시를 짓게 해서 실수를 하면 추궁하여 죽이라고 한 것이다. 이에 조비는 조식을 불러 '형제'를 시제로 하여 일곱 걸음을 걷기 전 시를 지어보라는 하명을 했다. 조식은 일곱 걸음을 걸으며 시를 만들어 바쳤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대는가

시에 감동하여 뉘우친 문제가 동생을 살려주었지만 조식은 결국 진(陳)에 분봉되어 감시상태로 지내다 비탄과 슬픔 속에서 일생을 마감했다.

이국의 공항에서 숨을 다해 널브러진 김정남의 사진을 본다. 결국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은 참사다. 혈육마저 냉정하게 처단하는 잔혹한 권력다툼의 결과가 무섭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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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