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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충북여중 교장

좋은 책을 만나면 좋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고민이다. 분야에 상관없이 읽는 편이니 시집도 좋고 역사든 여행 에세이나 철학, 소설, 심리학을 비롯해서 환경 생태 이슈를 다룬 책도 소중하다. 자본주의 실상을 파헤치는 책, 미래 전망을 분석하는 책, 에너지와 자원을 다룬 책, 이웃 나라 일본이나 중국의 삶을 다룬 책도 마다하지 않는다. 강신주와 유발 하라리의 신간을 기다리다가, 최근에는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와 이븐 바투타의 기행문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때때로 발터 벤야민이나 존 메이너드 케인즈처럼 놀라운 삶을 살아간 사람의 전기문에 몰입하기도 하고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고전에 빠져 시간을 잊기도 한다. 자연과학 분야는 양자역학이나 천체물리학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물론 전문 서적이 아닌 일반 대중의 수준으로 저술된 책이라는 제한은 있지만, 한 마디로 닥치는 대로 읽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분야에 대한 제한은 느슨해도 책의 내용이나 서술방식과 주제 등에 대해서는 입맛이 좀 까다로워진다.

나름대로 책을 고르는 방법은 몇 가지 있다. 여유로울 때면 온라인 서점에 접속하여 분야별 신간이라든가 추천 도서 목록을 살펴본다. 그러나 이 방법은 최근 정보를 확인하기 좋지만 화면에 소개된 내용만으로는 좋은 책인지 판단이 어렵다. 주문한 뒤 도착한 책을 펼쳐 보며 실망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서점에 가 책을 하나하나 만져보면서 고르는 방법은 좋은 대안이 된다. 그래서 동네 서점을 찾기도 하고 서울의 대형 서점을 찾아가기도 한다. 또 다른 방법은 중고 서점이다. 분야별로 제법 다양한 책이 있고, 가격까지 착하다. 그러나 중고서점에서 신간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 지금까지는 이런저런 방법들을 섞어가며 책을 골랐다.

그러다가 새로운 발견을 했다. 그렇다. 도서관이 있었다. 왜 진작 이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동안 도서관은 필요한 책을 대출받는 곳이라는 상식에 줄곧 머물러 있었다. 책을 읽다가 인상 깊은 구절에 밑줄을 긋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메모하며 다소 험하게 읽는 나로서는 대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각도를 바꾸어 보면 도서관에서는 신간을 비롯하여 제한 없이 얼마든지 책을 살펴볼 수 있다. 머무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야말로 마음껏 서문도 읽고 목차도 살피며 활자와 질감, 책의 두께와 서지 정보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여름방학 시간을 내어 사직동 교육도서관을 찾았던 경험이 새롭다. 기다란 서가에 빽빽하게 꽂힌 책을 보니 뭔가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칸칸이 꽂힌 책들을 천천히 살피기 시작한다. 서가 전체를 빠짐없이 꼼꼼하게 검색하기로 했으니, 급할 이유가 없다. 흥미로운 제목의 책, 널리 알려진 책도 있고 이미 읽었거나 내 책장에 있는 책을 만나기도 하며, 조금이라도 눈길을 끄는 책이 있으면 하나하나 빼서 낱낱이 살펴본다. 아예 서너 권씩 뽑아다 열람 책상에 가져다 놓곤 찬찬히 페이지를 넘기며 몰두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흘렀는지도 모르게 지났다. 다리가 뻗뻗하고 허리가 묵직한 느낌으로 꽤 오랫동안 빠져있던 것은 틀림없다. 배에서도 먹을 때가 지났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철학과 종교 사회과학 등 일부 서가 몇 개를 살폈을 뿐이니, 하루 이틀이면 되겠지라는 예상은 한참이나 빗나갔다. 과학, 기술, 예술과 문학 역사책을 모아 둔 서가를 모두 살피려면 앞으로 며칠은 더 와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여름방학에 시간이 부족하면 겨울방학을 이용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읽을 책 목록을 만들었다. 제법 많다. 좋은 책을 만나고 괜찮은 목록을 쥐게 되니 입가에 미소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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