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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충북여자중학교 교감

삼십년 넘는 교직 기간 중 이십오년 가까이 일반고에서 근무해 온 교사의 욕심으로, 고등학교가 대학 입시에의 종속에서 벗어나 정말 학교가 해야 할 교육을 실시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소망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으며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실이되 대부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이야기하는 내용 그대로, 대부분의 일반계고등학교는 여전히 대학입시를 위해 기능하고 있다. 교육 목표와 추구하는 인간상이 어떠하든, 각각의 학교에서 내세우는 교훈이나 비전이 어떠하든, 수업은 물론이고 각종 프로그램들의 주된 관심은 입시이다.

일반고 교감으로 재직하던 때 겨울방학을 이용해 심화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한 일이 있다.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독서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읽고 정리해 정기적으로 교감과 토론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 참가한 학생들이니만큼 의욕이 강했고, 자신의 진로와 관련한 도서를 선택해 읽었으므로 만족도 역시 높았다. 그런데 준비도 잘 하고 진지하게 참여하던 학생들이 프로그램 후반기에는 불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토론 시간이 예정돼 있었지만 학원엘 가야한다며 빠지는 학생도 있었다. 주된 이유는 학년말 학교생활기록부가 마감된 후에는 활동 내용을 더 이상 기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입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여부가 참여 기준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좀 더 난감한 장면도 있다. 국가 행사인 수능고사가 치러진 다음이면 입시에 연관이 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특정 대학교'의 수시 일반전형 1차 합격자 발표 소식에 쏠린다. 해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결과에 대한 정보 확인과 공유는 신속해서 그 대학의 발표가 있은 뒤 한두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지역의 고등학교별 합격자 숫자가 정리되고 부지런히 전파된다. 최종 합격 숫자도 아니고 공식적인 집계도 아니건만 그 대학의 1차 발표 결과는 입시에 대한 관심을 거의 독점하는 효과를 누린다. 발표 시기가 비슷한 다른 대학들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유독 그 특정 대학의 결과에만 집중하는 오래된 관습이 여전히 유효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마치 입시에 관심있는 사람들끼리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대학이 발표한 숫자는 나아가 각 고등학교의 그해 입시성과를 평가하는 잣대인 것처럼 행세하곤 한다. 여기에는 탈입시교육를 주장하는 교육이상론과 현실론의 대립, 입시 지상주의, 일등주의, 학교 서열화, 성과주의 등등 우리나라 일반고의 대입지도와 관련된 거의 모든 이슈들이 담겨 있기도 하다.

숫자의 효력이 길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기간은 길어야 2개월 정도이다. 그러나 짤막한 한두 개의 숫자들에 가려 있는, 각각의 학교에서 그때까지 해 왔으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과정들,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삼 년에 걸친 선생님들의 땀과 한숨 열정과 진지한 실천들을 생각하면 이와 같은 노력의 과정보다 특정 대학교의 합격자 숫자에 더 관심이 쏠리는 현실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것이 무슨 잣대인 양 떠받들어지는 현상에는 더욱 그렇다.

일삼아 살펴보더라도 교과서 어디에도, 학교의 교육목표 어디에도 또 개정된 교육과정 어디에서도 고등학교 교육의 목표를 대학입시로 설정한 대목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답답하지만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라는 주장에 대립각을 세우기도 마땅하지 않다. 그럼에도 지향점은 포기하기 어렵다. 심화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그것을 입시의 수단으로 여기기보다는 활동을 통해 더욱 성장하는 데 집중하기를, 정성과 열정을 기울인 선생님들과 학교의 수 많은 이야기들이 특정 대학이 발표하는 숫자에 묻혀버리는 가벼움이 사라지기를 희망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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