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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충북여자중학교 교장

학교 진입로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너 그루 서 있다. 누가 언제 심었는지는 몰라도 꽤 오래전에 심었음 직한 나무들이다. 가지를 높다랗게 또 넓게 펼쳐놓고 계절에 따라 어울리는 정취를 만들어 내어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학교를 찾는 사람들에게 여유와 편안함의 공간을 제공해 주었던 고마운 나무들이다. 매일 아침 등교맞이를 하는 나로서는 학생들이 들어오는 동쪽을 향해 서 있어야 하는 데 무성한 잎들이 그늘을 넉넉하게 만들어 눈부심과 더위를 가려주곤 해서 여간 미덥지 않았다.

그런데 오래된 나무는 서 있던 세월만큼 가지를 뻗기 마련이고, 그 가지들이 상해 부러지기도 하며 삭정이가 되어 저 높이 아슬아슬 걸려있는 것도 이치인가 싶다. 한 해 두 해 살아가는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삶에 연결된 이런저런 사연들이 늘어나고 개중에는 피해 갈 수 없는 상처들도 생겨나듯 느티나무도 그런 듯했다. 태풍이 지나간 어느 날 오후 한 선생님이 느티나무 위쪽을 가리켰다.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굵은 나뭇가지가 부러진 채 중간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말라버린 가지였지만 나뭇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다가 바람에 부러지면서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옆에 서 있는 다른 나무들도 자세히 올려다보니 굵기는 달랐지만 그렇게 매달려 있는 가지들이 몇 개씩 보였다.

아래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이라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느티나무가 정서적인 안정과 더불어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어도, 오래된 나무들의 가지를 잘라내는 것이 내키지 않는 일이어도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안전을 생각할 때 곧바로 가지치기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정실과 협의하여 가능한 빨리 전문업체에 의뢰하도록 결정했다. 사다리차를 비롯해 여러 장비를 동원한 업체에서는 그들의 전문성에 맞추어 삭정이를 제거하고 가지를 쳐냈다. 주변 풍경이 달라졌다. 그야말로 하루 만에 훤해졌다. 어찌 보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잘라냈다. 그래도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작업이었고, 작업도 이미 완료된 상태였으므로 다른 방도는 없었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그동안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시내 모습이 다 보이게 되어 시원하다며 좋아했고, 어떤 선생님은 그늘에 앉아 잠시나마 쉴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며 서운해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 살아왔을 것이 분명한 나무들을 인정사정없이 가지치기해 버렸다는 미안함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를 베어버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쉬움 등의 거부반응을 느끼곤 했던 터라 스스로 뭔가 이율배반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심하기는 해도 가지치기를 한 것이지 베어버린 건 아니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을 우선해야 하는 것은 분명했다.

가지치기를 한 이후부터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햇살을 가려줄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등교맞이를 할 때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손가리개를 하고 서 있어야 했다.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저쪽에 굵직하기는 해도 둥치와 중간에서 잘린 서너 개의 가지로 휑뎅그렁하게 서 있는 나무 모습이 안쓰럽게 눈에 들어오곤 했다. 점심식사를 하고 잠시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곤 하던 학생들과 선생님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학기가 지나고 나무들은 여전히 앙상한 모습으로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여느 나무들이 그렇듯 틀림없이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모르기는 해도 갈망은 더욱 클 것이다. 내 마음도 다르지 않다. 잘려나간 가지 끝에서 새순이 나오기를, 그것도 무성하게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어린 나무처럼 잔가지가 모두 사라져 옛 모습을 온전히 회복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다시 무성하게 자신의 공간을 되찾아 가기를, 새로운 사연들을 하나씩 둘씩 만들어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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