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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충북여중 교장

2학기 개학하는 날, 등교 맞이를 하다 보니 몇몇의 학생들 모습이 뭔가 달라 보인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가 그게 뭘까 생각해보니 교복이었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줄여 입은 듯하다. 복장 규정보다는 아마도 개성이 더 중요했는가 보았다.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과감함의 정도 여부를 떠나 규정을 따르지 않고 자의대로 교복을 수선한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2007년 미국 <워싱텅포스트>지에서 어떤 실험을 했다. 1월 어느 날 출근 시간 무렵, 워싱턴 DC의 랑팡 플라자 지하철역에서 허름한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야구모자를 눌러 쓴 청년이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열정적인 연주를 시작했다. 40여 분간 모두 6곡을 연주하는 동안 그의 앞을 지나간 사람은 천 명이 넘었다. 그러나 그의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넣은 사람은 30명이 채 되지 않았으며, 1분 이상 멈춰서서 연주를 들은 사람은 7명 뿐이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여느 나라 길거리 연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날 바이올린을 연주한 사람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얻고 있었던 조슈아 벨이었다. 길거리 연주 이틀 전 그의 공연 입장료는 100달러가 넘었으며 티켓은 매진되었다. 그가 연주한 바이올린도 그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였고, 연주곡은 난이도가 높은 것들이었다.

이 실험 사례는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힌다. 뛰어난 연주자의 공연일지라도 바쁜 출근길에 사람들이 과연 시간을 할애하여 감상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가능하고, 실험 기획 의도대로 뛰어난 예술이라는 것을 알고 듣는 것과 모르며 듣는 것 사이에 발생하는 차이에 관심을 둘 수 있다.

다른 시각에서 이 실험은 내용과 형식에 관한 생각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그가 콘서트 홀에서처럼 복장을 갖추어 입고, 역시 복장을 갖추어 입은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는 물론이고 피아노, 첼로 등의 협조를 받았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비록 장소가 번잡한 지하철역인데다 바쁜 출근 시간이었지만 그가 공연에 필요한 형식을 두루두루 갖추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연주에 쏟는 조슈아 벨의 열정이 장소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의 연주 내용은 콘서트 홀이나 지하철 역에서나 차이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같은 내용에 대하여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일부러 적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 콘서트 홀을 찾는 사람들의 음악적 관심이 지하철을 지나가는 불특정의 사람들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이날 조슈아 벨은 지하철 역으로 푼돈을 벌기 위해 나온 악사 이상의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세계적 수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 내용보다 그의 겉모습 즉 형식에 집중했던 것이다. 뛰어난 실력보다는 거리의 악사들과 비슷한 허름한 옷차림과 야구 모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을 터였고, 그러한 겉모습이 그가 만들어내는 선율보다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었다.

겉모습 등의 형식을 통해서 곧바로 그 속에 담긴 내용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형식과 내용 사이에 시간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쉽게 눈에 띄는 형식 속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형식에 먼저 반응하곤 한다. 이러한 경향이 심해지면 형식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신경을 쓰기보다 형식 그 자체 몰두함으로써 형식이 내용을 정복하는 경향이 확대될 것이다. 규정을 외면하고 교복을 수선해 착용하는 학생들에 대한 접근도 맥락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겉으로 보이는 한 가지 장면만으로 판단하게 되면 형식과 내용의 괴리를 피할 수 없다. 겉모습이 곧 그 사람의 내용이라는 단순함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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